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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척전>의 창작 배경과 열녀 담론Background of Choecheokjeon and the discourse on virtuous women in Choecheokjeon

Other Titles
Background of Choecheokjeon and the discourse on virtuous women in Choecheokjeon
Authors
엄태식
Issue Date
2012
Publisher
한국고전여성문학회
Keywords
최척전; 조위한; 최척; 옥영; 상산; 제최척전; 이민성; 홍도; 이생규장전; 만복사저포기; 조찬한; 유씨; 열녀 담론; Choecheokjeon; Jo Wihan; Choe Cheok; Okyoung; Sangsan; Jechoecheokjeon; Yi Minseong; Hongdo; Isaenggyujangjeon; Manboksajeopogi; Jo Chanhan; Yussi; the discourse of virtuous woman.
Citation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no.24, pp.81 - 124
Journal Title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Number
24
Start Page
81
End Page
124
URI
https://scholarworks.bwise.kr/gachon/handle/2020.sw.gachon/17248
DOI
10.17090/kcwls.2012..24.81
ISSN
1229-9316
Abstract
『菊堂排語』에 나오는 崔陟은 <최척전>의 최척과 동일인으로 보기 어려우며, <최척전>의 後識는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또 <紅桃>와 <최척전> 사이에는 문헌 전승에 의한 영향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한데, <홍도>와 <최척전> 간의 인명 표기, 서사의 합리성 등을 고려한다면, 조위한이 <홍도>를 변용하여 <최척전>을 창작했다고 보아야 한다. 李民宬은 <題崔陟傳>에서 ‘당시 商山의 어떤 士人이 스스로 <최척전>을 지었다고 말했다’고 썼다. 趙緯韓은 1622년에 맏형 趙繼韓의 訃音을 듣고 上京했다가 商山 牧使였던 아우 趙纘韓과 함께 商山으로 갔다. 그렇다면 <제최척전>에서 말한 ‘상산의 사인’은 결국 ‘상산에 가 있었던 조위한’을 가리키는 것인데, 조위한이 상산에 있었던 시기는 1622~1623년이다. 이로써 볼 때, <제최척전>의 언급은 결국 조위한이 1622~1623년에 <최척전>을 지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는바, 그간 <최척전> 後識에 의거, 조위한이 1621년에 南原의 周浦에서 <최척전>을 창작했다고 본 견해는 수정될 필요가 있다. 조위한이 <李生窺墻傳>․<萬福寺摴蒱記>․<홍도>를 활용하여 <최척전>을 창작한 주된 이유는, 여주인공 玉英을 ‘賊의 수중에 떨어졌다가 살아 돌아온 烈女’로 형상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옥영의 이야기는, 丁酉再亂 때 남편 조찬한을 적의 포위망에서 벗어나게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柳氏의 이야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위한은 조찬한․유씨 부부에 대한 연민 때문에 <최척전>을 지었지만, 그 역시 전란이라는 특수하고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도 정절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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