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가의 감각

Abstract

<처용가>는 신라 귀족 문화가 난숙할 대로 난숙하여 이제 쇠퇴의 조짐이 나타나는 헌강왕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쇠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난숙의 양상이 어떠했는지를 살피는 것이 필요한데, 본고는 작품에 반영된 당대인의 감각에 대해 논하였다. 이 작품은 세 인물이 간통 사건에 휩싸인 상황에서 창작되었다. 따라서 뜻밖의 상황에 대응하는 화자의 감각적 태도 및 내면 정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1～4행은 화자의 시점이 넓은 데에서 좁은 데로, 바깥에서 안으로 초점화해 가고 있다. 몸의 움직임에 따라 서라벌에서 집, 다시 잠자리로 좁혀지는 공간의 변화가 나타난다. 어두운 밤에 대비된 밝은 달빛을 배후에 두고 화자의 시각이 점차 안으로 들어가 잠자리를 클로즈업하는 양상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된다. 이렇게 시각이 예민하게 움직이는 중에 촉각 또한 작동하고 있다. 화자는 달빛을 받아 몸이 들떠 있는 상태에서 뜻밖의 사태에 직면한다. 제4행의 ‘가랑이가 넷’이라고 표현한 성교의 장면에서 촉각적 심상이 뚜렷이 드러난다. 이를 뒤이어 처용 아내를 뺏기고 다시 뺏는 상황이 그려지는데, 그녀를 두고 처용과 역신이 벌이는 싸움은 몸과 몸이 부딪히는 행동에 다름 아니다. 또한, 몸을 오염시킨다는 점에서 처용 아내를 범한 역신 자체가 촉각적 심상을 환기하고 있다. 이렇게 감각 위주로 전개된 제1～4행을 지나 제5, 6행에 오면 사태를 올바로 인식하려는 의식의 작용이 부각된다. 화자의 의식은 집 밖을 지향하는바 여러 가지 사정을 복합적으로 인식하여 자신의 태도를 정한다. 그리하여 제8행에서 아내를 다시 빼앗기보다는 싸움에 끼어들지 않음으로써 자기 몸을 깨끗이 지키겠다며 물러선다. 감각에 의한 직관적 사태 파악에서 나아가 복합적인 의식 작용에 의해 얻은 결과이다. 이러한 반전은 감각과 의식의 상호 작용을 거쳐 이루어진 것이기에 시적 긴장감이 팽팽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고조된 의식의 극적 전환이 주는 쾌감을 맛보게 된다. 이와 같이 <처용가>는 시각을 위주로 시상을 전개하면서 촉각적 심상이 주제 형성에 기여하는 작품이다. 9세기 중엽에 널리 퍼져 있던 감각 중시의 문화적 풍조가 작품에 반영된 듯하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향가 작품이 지닌 문화적 감수성, 세련된 감각, 복합적 의식 등이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 작품의 감상 및 평가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