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tailed Information

Cited 0 time in webof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Metadata Downloads

조선후기 왜관 통제와 교간사건의 처리 - 1859년 교간사건을 중심으로 -

Full metadata record
DC Field Value Language
dc.contributor.author장순순-
dc.date.available2020-02-28T05:41:02Z-
dc.date.created2020-02-12-
dc.date.issued2016-
dc.identifier.issn1229-3687-
dc.identifier.urihttps://scholarworks.bwise.kr/gachon/handle/2020.sw.gachon/9232-
dc.description.abstract본 연구는 왜관에서 조선여성과의 교간이 발각되어 對馬藩으로 압송된 범죄 일본인이 對馬藩에서 조일 간에 약조로 합의된 범죄자 처벌규정에 입각하여 처리되었는지 살펴보고, 교간사건에 대한 양국의 인식과 그 대처 양상은 어떠했는지를 밝혀보는데 목적이 있다. 그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후기에 조선측은 왜관에 거주하던 일본인이 조선인 여성을 왜관으로 끌어들여 성관계를 한 사실(교간)이 발각되면 그 당사자는 물론 연루자 전원을 梟示 내지는 유배라는 극단적인 엄벌방침을 취하였다. 그러나 일본측(對馬藩)은 교간 일본인에 대한 처벌이 그리 엄하지 않았다. 그러나 1711년 신묘통신사와 對馬藩主 사이에 왜관에서 교간 행위를 强奸, 和奸 등으로 차등을 두어 처벌하기로 규정한 약조가 맺어지면서 교간 일본인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었다. 이로써 교간 일본인은 對馬藩에 압송되어 신묘약조의 규정에 따라 처벌되었다. 1859년 교간사건의 조선인 가운데 주범 金用玉은 초량왜관 수문 밖에서 효수형에 처해졌으며, 李文周는 유배되었고, 교간여성인 趙錦紅은 杖 100대 후 유배형에 처해졌다. 그리고 교간 일본인 도지로(藤次郞)와 기이치로(喜一郞)는 왜관에서 禁足令이 내려졌고, 藩船에 실려 對馬로 압송되었다. 이 두 일본인에 대한 처벌은 對馬藩의 명을 받은 우치마와리테다이(打廻手代)의 조사와 취조 후, 9월 21일 ‘犯奸倭’의 처벌에 대한 對馬藩主의 재가가 내려지면서 마무리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거주지였던 府中(嚴原)에서 추방되어 지방으로 유배된 후 평생 동안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는 종신노(永代奴) 형에 처해졌다. 이를 통하여 왜관에서 죄를 지은 일본인에 대해서 일본측의 처벌이 ‘왜관 내 禁足令’이나 ‘쓰시마로의 귀환’에 그치는 등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왜관의 운영이 조일 간에 정약된 조약대로 처리되었고, 그 결과 조선 조정이 왜관설치 당시부터 가졌던 ‘일본인 통제’라는 왜관정책은 조선후기 내내 일관되게 유지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양국간에는 합의된 교간 처벌 규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교간사건을 바라보는 양국의 시선에서는 입장차가 상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측이 교간 일본인에 대해 조선인 주모자와 同律 처벌을 요구하면서 신묘약조의 규정보다 강경하게 교간 당사자의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는 것에 반하여. 對馬藩에서 이뤄진 교간 일본인에 대한 취조가 교간의 대가로 그들이 조선인에게 지불한 돈의 출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점이 그 예이다. 교간 일본인인에 대한 조사가 교간행위보다 왜관에서 밀무역(潛商)에 관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對馬藩으로서는 藩財政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밀무역(潛商)이 교간보다 더욱 중대하게 간주되고 처리되었음을 시사해준다. 교간사건을 대하는 이러한 양국의 차이는 상호간의 문화와 사회적 가치관의 차이에서 뿐 아니라 왜관이라는 공간을 ‘통제와 외교의 공간’으로 볼 것인가, ‘무역의 공간’으로 볼 것인가 라는 시각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판단된다.-
dc.language한국어-
dc.language.isoko-
dc.publisher한일관계사학회-
dc.relation.isPartOf한일관계사연구-
dc.title조선후기 왜관 통제와 교간사건의 처리 - 1859년 교간사건을 중심으로 --
dc.title.alternativeA study on the Waegwan control and handling of prostitution case in the later Joseon period -Focusing on 1859 prostitution case--
dc.typeArticle-
dc.type.rimsART-
dc.description.journalClass2-
dc.identifier.bibliographicCitation한일관계사연구, no.54, pp.79 - 116-
dc.identifier.kciidART002139259-
dc.citation.endPage116-
dc.citation.startPage79-
dc.citation.title한일관계사연구-
dc.citation.number54-
dc.contributor.affiliatedAuthor장순순-
dc.subject.keywordAuthor왜관-
dc.subject.keywordAuthor신묘약조(교간약조)-
dc.subject.keywordAuthor교간-
dc.subject.keywordAuthor대마번(對馬藩)-
dc.subject.keywordAuthor초량왜관-
dc.subject.keywordAuthor밀무역(잠상)-
dc.subject.keywordAuthor신묘통신사-
dc.subject.keywordAuthorWaegwan-
dc.subject.keywordAuthorShinmyo Agreement (辛卯約條-
dc.subject.keywordAuthorGyogan Agreement)-
dc.subject.keywordAuthorProstitution-
dc.subject.keywordAuthorTsushima Domain(對馬藩)-
dc.subject.keywordAuthorChoryang Waegwan(草梁倭館)-
dc.subject.keywordAuthorsmuggling-
dc.subject.keywordAuthorShinmyo Tongshinsa(辛卯通信使)-
dc.description.journalRegisteredClasskci-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ETC > 1. Journal Articles

qrcode

Items in ScholarWorks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Altmetrics

Total Views & Downloads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