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중의 유배 생활과 우울증, 그리고 <구운몽> 창작

Abstract

본고는 <구운몽>의 창작 배경과 작품 세계의 불일치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극단적인 절망의 유배 생활 속에서 작가는 여유롭고 조화로운 작품 세계를 펼쳐 보였다. 이렇게 상반된 점을 설명하기 위해 김만중이 유배 생활에서 지녔던 심리 상태를 살펴 우울증 증세를 찾아보았다. 주로 선천과 남해 유배기의 한시를 대상으로 김만중의 심리를 고찰하였다. 그 결과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어 ‘재가 된 마음’의 절망감, 형, 친구, 급기야 어머니까지 잃은 상실감, 이런저런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불안감과 불면증, 한낮에도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 유폐 의식 등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러한 심리들이 얽혀 ‘덧없는 인생 보기도 싫고’, 매사에 ‘쉬 슬퍼지는’ 우울증을 앓았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구운몽> 창작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보고 그 단서로 『서포연보』의 기록을 재검토하였다. 그리하여 심각한 상실감을 토로한 시에 연이어 소설 창작이 언급되었고, 어머니의 소일거리에 적합한 이야기를 만들었고, 어머니뿐 아니라 작가 자신의 뜻을 넓히고 슬픔을 달래려고 지었다는 등의 진술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진술은 <구운몽>이 어머니를 위로하고 자신의 우울증을 풀어 버리기 위해 지은 작품임을 시사한다. 실제 <구운몽>의 구조와 내용을 통해 이러한 점을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하였다. 한시에 나오는 ‘꿈’과 ‘뜬구름’, 불교에 기울어지는 생각, 주인공이 고뇌 끝에 꿈을 꾸는 작품 내적 전개 및 현실과 꿈의 융화라는 구조적 특질 등이 유배 중의 작가와 작품 간의 긴밀한 관련성을 보여 준다. 또한, 사건과 인물을 통해서도 우울증을 풀기 위한 작가의 의도를 찾아볼 수 있다. 정경패의 설욕과 가춘운과의 만남, 황태후의 늑혼 압력과 이소화의 문제 해결력, 진채봉에 대한 황실의 관용 등의 사건 속에 숙종에게 용서받고자 하는 김만중의 심리가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김만중이 우울증을 벗어나기 위해 <구운몽>을 지었다고 본다면 이 작품이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우울증 극복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구운몽>이 중세 소설로서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현대 독자가 자신의 문제를 몰입하여 읽을 만한 자료가 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다만, 작품에서 펼쳐 보인 인간 내면의 욕망 충족 이야기, 독자에게 위로가 되는 조화롭고 이상적인 작품 세계 등으로 인해 우울증 치료를 위한 독서 목록에 오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