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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이후 식민지 조선에서의 뉴스영화 연구 (1937~1941)-뉴스영화 제도화의 제 양상을 중심으로A Study on the Newsreel in Colony Chosun(Korea) after the Sino-Japanese War

Other Titles
A Study on the Newsreel in Colony Chosun(Korea) after the Sino-Japanese War
Authors
함충범정태수
Issue Date
Nov-2013
Publisher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Keywords
뉴스영화; 중일전쟁; 식민지 조선; 조선총독부; 일본뉴스; Newsreel; Sino-Japanese War; Colony Chosun(Korea); The Chosun Government-General; The Japan News
Citation
한국민족문화, no.49, pp.473 - 500
Indexed
KCI
Journal Title
한국민족문화
Number
49
Start Page
473
End Page
500
URI
https://scholarworks.bwise.kr/hanyang/handle/2021.sw.hanyang/161467
DOI
10.15299/jk.2013.11.49.473
ISSN
1226-7562
Abstract
본 논문은 중일전쟁을 통해 식민지 조선에서 뉴스영화가 어떻게 매체적 입지를 강화하고 영사기와 관람석을 점유하며 문화 정책의 중심에 놓이는지 그 과정을 탐구한다. 영화 기술과 국제 정세의 변화로 전 세계적으로 뉴스영화가 성행하던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도 뉴스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제작의 기운이 높아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37년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전시 상황에 돌입한 뒤 영화의 선전-계몽 역할이 더욱 강화됨에 따라 정책, 산업 양면에서 뉴스영화의 비중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중일전쟁 이후 식민지 조선의 관변 단체, 군대 기구, 관공 기관 등에서는 시국 인식과 전시 동원을 목적으로 강연회와 영화회를 결합한 형태의 각종 군중 집회를 개최하였다. 특히 신문사들, 그 중에서도 총독부의 기관지를 발행하던 매일신보사와 경성일보사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여기에서는 주로 ‘국가’의 시책 선전과 계몽을 위한 ‘시국영화’가 상영되었는데, 대부분은 전시의 상황과 후방의 역할을 필름 속 영상과 소리를 통해 투사하였다. 그 중에서도 뉴스영화가, 특히 ‘사변뉴스’로 불리던 중일전쟁 관련 뉴스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다. 또한, 이러한 흐름 속에 조선(경성)에도 뉴스영화를 집중적으로 상영하는 이른바 ‘뉴스영화 전문관’이 등장하였다. 아울러, 1940년 6월부터 일본의 뉴스영화를 일원화하여 제작-배급되기 시작한 사단법인 일본(뉴스)영화사의 <일본뉴스>가 조선에서도 그 입지를 강화하였다. 뉴스영화의 의무 상영에 대한 법제적 장치 역시 일본과의 교신 및 연동을 통해 마련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는 1941년 12월 8일 이후 더욱 강화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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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PERFORMING ARTS AND SPORT (DEPARTMENT OF THEATER AND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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