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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洲 尹新之의 생애와 시문학 연구A Study on the Literature of HyunJu(玄洲) YunSinJi(尹新之)

Other Titles
A Study on the Literature of HyunJu(玄洲) YunSinJi(尹新之)
Authors
김은정
Issue Date
2009
Publisher
한국한시학회
Keywords
YunSinJi(尹新之); royal son-in-law; King SunJo(宣祖); literature; displeasure; cultivation of mind; Sadal(辭達); a philosophical view; 尹新之; 駙馬; 宣祖; 文藝; 不平; 內修; 辭達; 達觀
Citation
한국한시연구, no.17, pp.35 - 65
Journal Title
한국한시연구
Number
17
Start Page
35
End Page
65
URI
https://scholarworks.bwise.kr/hongik/handle/2020.sw.hongik/22114
ISSN
1598-0545
Abstract
海嵩尉 尹新之(1582∼1657)는 宣祖代의 三駙馬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부마의 신분이면서도 文藝로서 이름이 높았던 인물이다. 駙馬는 입신할 수 없다는 신분적 제약이 있었기에, 윤신지는 부마로 선발된 것을 ‘廢人’이 된듯이 여겼다. 그러나 宣祖의 권면과 타고난 자질로서 그는 文藝에 전념하였다. 光海君 즉위 후에는 玄江에 은거하였다. 일찍이 광해군과 사이가 벌어져 있었고, 癸丑獄事나 廢母論 등의 정치적인 사건 때문에 부친인 尹昉과 윤신지 모두 물러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동안 윤신지는 백성 속에 섞여 살면서 도성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으나, 역시 世事에 대한 비판의식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不平’한 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없기에 윤신지는 시로서 자신의 감회를 밝혔다. 인조반정 이후에 다시 윤신지의 가문은 정계에 복귀하였고, 윤신지 역시 대궐을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특히 1626년에는 安州 迎慰使의 임무를 가지고 나가서 전에 없던 풍류를 즐기고, 妓妾 松月과의 인연을 맺기도 하였다. 그러나 윤신지는 평생동안 스스로 경계하는 內修의 삶을 살았다. 그러한 점 때문에 李植은 ‘燕超齋’의 호를 올렸다. 또한 그의 시문은 기이함을 배격하여 ‘辭達’을 힘쓸 뿐이었다. 윤신지는 76세까지 수를 누린 반면, 그의 주변 인물들은 모두 일찍 세상을 떴다. 한편, 그는 생전에 여러 임금과 왕비의 國葬을 책임져야만 했다. 그는 늘 죽음을 가까이 접하였을 것이고, 초탈한 달관의 인생관이 더욱 심화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대신 초년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細瑣한 사물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사물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에 그치지 않고 사물을 통해 달관한 정신세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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