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야 카바코프 ‘10 Characters'의 사회적 의미 해석

Abstract

20세기 후반 이후 현재까지 미술은 다원주의적 양상을 그 특징으로 하고, 해체와 향수의 정서적 공황을 가속해왔다. 거대서사로 논할 수 없는 주변의 작은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그에 따른 이슈와 해석도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 글은 일리야 카바코프의 작업을 사회, 역사적 환경과 조건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해보고 동시대인들이 겪는 디아스포라적 정서를 그의 작업을 통해 보다 면밀하게 읽어가고자 마련된 것이다. 일리야 카바코프는 이데올로기의 거대한 장벽이 인간의 삶의 체험과 기억의 정체성 앞에 무력한 것임을 일깨운 동구 출신의 동시대 작가이다. 동구에서 시작된 그의 작업은 1980년대 이래 서구인들에게 소개됨으로써 동구를 다시 체험하게 하고, 스스로는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먼 시공간적 여정과 이로부터 발생하는 디아스포라적 존재로서의 삶을 환기시키는 정서를 표출하고 있다. 카바코프는 구소련 시절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피폐한 인간의 삶의 조건의 문제에 관심을 갖으며 기 시작하면서 작업의 길로 들어섰으며, 그에게 예술은 무엇보다도 구체적으로 접근 가능한 현실일 때 의미있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을 그 정서적 공황과 더불어 표현한 작업 가운데 하나가 공동아파트를 그대로 보여준 <Ten Characters>(1981-88)이다. 카바코프가 스스로의 작업 방식을 ‘총체적 설치(total installation)’라 칭한 그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Ten Characters>의 경우, 10명의 인물을 위한 방이 설치되는데, 10명의 인물은 부재한 상태로 삶의 흔적으로서의 공간만이 남겨진다. 카바코프는 서구에 알려지기 전 구소련에서 ‘비공식예술’이라는 지하예술단체로 활동하면서 감시와 처벌 속에서 좌절된 자유와 욕망의 본질을 체험한 바 있다. 이러한 정서적 체험과 기억을 더 이상 정치적 구속과 억압이 없는 서구에서 다시금 불러내고 있는 <Ten Characters> 의미는 이미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옮겨진 집(home)’으로서 온갖 트라우마를 넘어서 친밀과 향수의 내밀한 정서까지도 함의한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