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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 乾隆帝의 貢馬圖와 서역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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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유재빈-
dc.date.accessioned2022-09-05T05:41:16Z-
dc.date.available2022-09-05T05:41:16Z-
dc.date.created2022-09-05-
dc.date.issued2022-
dc.identifier.issn2093-2987-
dc.identifier.urihttps://scholarworks.bwise.kr/hongik/handle/2020.sw.hongik/30349-
dc.description.abstract건륭제는 재위 초년부터 말년까지 다양한 형태의 공마도를 그렸다. 그러나 각 시기마다 말 진상 의 의미는 차이가 있다. 우선 1743년 ≪십준도≫는 이미 청 황실과 팔기군의 일원이 된 몽고족군왕들이 진상한 것이다. 이들은 조공의 의무를 지닌 번족이 아니었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이 그림은 공마도라 부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 마리 말은 모두 진상자 부족의 이름이 표시되었 으며 몽고어로 이름이 부가되어 그 출산지의 특성을 강조하였다. 5년 후 1748년에 제작된 3축의 <준마도>는 준갈이와 평화 협정기간에 그려진 그림이다. 조공 의 예를 통해 청 조정은 국경의 안보를 확보하고 준갈이는 무역의 이득을 꾀할 수 있었다. 준갈이 의 경우는, 내신의 진상이었던 1743년 ≪십준도≫와 다른 외번의 조공이었음에도 그림은 선례의 형식을 그대로 따라 그려졌다. 이는 청이 준갈이의 조공을 대등한 협정이 아니라 이미 복속된 군신관계로 위계 짓고 싶어했음을 보여준다. 건륭제는 준갈이 사신이 실제로 조공을 올리는 조공 장면 을 포함함으로써 그 의미를 강화시켰다. 1759-1763년에 제작된 합살극, 발달산, 애오한의 공마도는 서역 정벌의 결과로 제작된 것이다. 건륭은 1757년 준갈이 전투에 이어 합살극 일대의 종족을 차례로 정복하였다. 준갈이와의 평화협정 기간과 달리 이 시기의 조공은 ‘복속’을 의미하였다. 예전의 어제가 건륭제의 말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이 표출되었던 것과 비교해 이 시기의 어제는 조공마에 담긴 서역 정복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1772-73년에 제작된 다양한 출산지의 말 그림은 1771년 토구트의 입국이 계기가 되었다. 건륭 제는 토구트의 이주 요청을 ‘귀환’이라 부르며, 천하가 감복하여 스스로 제국의 통치아래 들어오는 것으로 평가하였다. 그는 앞서 1748년의 준갈이 준마도 3축과 함께 이 시기 토구트를 비롯한 다양한 민족 구성원이 진상한 7마리의 준마도 7축을 합쳐서 다시 ‘십준도’라고 부르게 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출신지의 십준도 ‘재’제작은 건륭의 초년기부터 시작된 서역 통치가 비로서 완성되었음을 상징하였다. 건륭이 낭세녕을 비롯한 선교사 화가들에게 주문한 공마도는 일관된 흐름을 보이면서도 다양한 도상과 형식으로 변주되어 나갔다. 건륭은 기본적으로 이공린의 <오마도>에 보이는 ‘공마도’의 도 상과 백묘법의 화풍, 조맹부의 <욕마도>에 나타나는 ‘교원목마’의 도상과 채색 화풍을 교차하며 병행해나갔다. 그의 말은 전통 ‘시화합벽첩’으로 제작되어 산수화나 묵죽화와 같은 문인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고, 수렵도에 등장하여 ‘고사 속 실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교차와 변주 속에서 중화와 이족의 경계는 사라진다. 그는 자신이 정복한 민족의 개별성을 조공마의 실증적 묘사와 한, 만, 몽, 회문의 다중 언어체계로 드러내었다. 이를 통해 공마도는 화이관이 아닌 다민족적 특성 지향하게 되었다. 황실 소유가 된 각지의 말은 다시 만주족 황실 의례와 황제 기마 초상에 삽임됨 으로써 청 제국의 일원이 되었다. 즉 다민족성이 동등하고 산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청 문화로 흡수, 귀결되는 되는 것이다.-
dc.language한국어-
dc.language.isoko-
dc.publisher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dc.title淸 乾隆帝의 貢馬圖와 서역 관계-
dc.title.alternativeThe Tribute Horse Paintings and the Mystification of Qing Conquest of Central Eurasia during Qianlong era(r. 1735-1796)-
dc.typeArticle-
dc.contributor.affiliatedAuthor유재빈-
dc.identifier.bibliographicCitation인문과학연구, no.35, pp.111 - 153-
dc.relation.isPartOf인문과학연구-
dc.citation.title인문과학연구-
dc.citation.number35-
dc.citation.startPage111-
dc.citation.endPage153-
dc.type.rimsART-
dc.identifier.kciidART002871257-
dc.description.journalClass2-
dc.description.journalRegisteredClasskci-
dc.subject.keywordAuthorEmperor Qianlong-
dc.subject.keywordAuthorGiuseppe Castiglione-
dc.subject.keywordAuthortribute paintings-
dc.subject.keywordAuthorhorse tribute-
dc.subject.keywordAuthorCentral Asia-
dc.subject.keywordAuthorMongolia-
dc.subject.keywordAuthorDzungar-
dc.subject.keywordAuthorTorgut-
dc.subject.keywordAuthor건륭제-
dc.subject.keywordAuthor낭세녕-
dc.subject.keywordAuthor공마도-
dc.subject.keywordAuthor조공마-
dc.subject.keywordAuthor서역-
dc.subject.keywordAuthor몽고-
dc.subject.keywordAuthor준가르-
dc.subject.keywordAuthor토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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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 > Aesthetics & Art Histor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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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 Jae 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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