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잡록』에 나타난 권별의 역사인식

Abstract

이 논문은 權鼈이 편찬한 인물 사전인 『海東雜錄』의 사학사적 의미를 살펴본 것이다. 『해동잡록』은 크게 역사편과 인물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에서 권3까지 역사편에서는 상고기에서 고려까지를 다루고 있다. 내용은 단군에서 삼한까지의 上古紀의 왕조 변화를 적고, 이어 신라의 박혁거세에서 고려 공양왕까지 역대 왕의 업적을 적고 있다. 그리고 弓裔․甄萱과 外寇를 적었다. 권4에서 권14까지는 인물편으로 총 1,101명의 인물약전이 수록되었다. 15세기에는 관부에서 편찬한 『東國通鑑』이 역사 책의 전범이었으나, 16-17세 기에는 이를 사림파 자신의 관점에서 정리한 사략형 사서가 역사서의 대표적 형태로 나타났다. 『해동잡록』의 역사편은 이들 사략형 사서와 마찬가지로 역사를 간략히 정리하여 참조하기 위해 편찬되었다. 『해동잡록』 역사편의 초기 국가 기록에서는 『삼국사기』의 정사 기록 외에 『삼국유사』, 『동명왕편』, 『제왕운기』 등 사서와 『동국여지승람』 등 정부 자료에서부터 족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록을 참조하고 있으며, 이것은 상고사 기술을 풍부하게 하였다. 『고려사』에 근간한 고려 왕조의 기술에서도 부친 권문해가 수집한 다양한 자료가 활용되었다. 『해동잡록』 인물편에서는 비록 사전적 형태를 취하였어도 인조반정과 이어지 는 호란을 겪은 당시 영남지역 선비들의 인물인식이 투영되어서 절의를 지킨 사람을 높이 평가하고 성리학을 도입하였던 인물을 크게 소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인물의 끝에는 효자편을 두어 효행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도덕적이고 윤리적 측면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직전 시기에 나온 『동사찬요』의 인물 설정이나 도덕적 평가와 유사하다. 그리고 『해동잡록』은 역사편과 인물편을 합해서 보면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통사가 된다. 『해동잡록』의 단선적이고 정통적인 상고사인식과 절의나 도덕 그리고 효행을 숭상하는 인물인식은 영주에서 간행된 유희령의 『표제음주동국사략』이나 오운의 『동사찬요』 등 역사서나 부친인 권문해로부터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다음 시대에 등장하는 이유장, 홍여하 등 역사학자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기 영남지역 남인학파가 가지는 역사인식과 인물인식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이 책이 이후 지역 사회에서 계속 이용되었다는 것은 영남지역 퇴계학파가 가지는 역사인식의 원류적 역할을 하였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