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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론 - 牛河梁 유적과 중국 초기 문명론을 중심으로 -

Authors
김정열
Issue Date
2014
Publisher
한국고대사학회
Keywords
Hongshan Culture; Niuheliang site; Yellow Emperor king; State; Chiefdom; 홍산문화; 우하량 유적; 황제; 국가; 추방
Citation
한국고대사연구, no.76, pp.5 - 54
Journal Title
한국고대사연구
Number
76
Start Page
5
End Page
54
URI
http://scholarworks.bwise.kr/ssu/handle/2018.sw.ssu/10683
ISSN
1226-6213
Abstract
기원전 5000년기에 요하 일대에서 성립하여 발달하기 시작한 신석기문화의 한 유형, 紅山文化는 중국은 물론 우리 학계도 커다란 관심을 가지는 주제이다. 그것은 이 문화에서 형성된 거대한 규모의 유적과 독특한 형태의 유물이 세인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을 뿐만 아니라, 이 문화에서 나타난 갖가지 문화 현상이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논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홍산문화에 대한 지견은 매우 부족한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학계에서, 특히 牛河梁 유적에서 발견된 대형 적석총, 여신묘 등의 대형 유구를 바탕으로 홍산문화가 이미 문명의 단계에 도달했다고 견해가 만연하고 있다. 게다가 일부 연구자는 이 문화가 황제와 그 부족이 창조한 것이며, 따라서 홍산문화는 ‘황제’로부터 시작되는 중국 문명의 원류가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 국내에서는 특히 유사역사학자를 중심으로 홍산문화는 황제가 아닌 고조선과 관련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홍산문화는 오히려 우리 민족사의 원류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어 있다. 홍산문화의 유적과 유물에서 관찰되는 일련의 현상이 과학적으로 정의된 문명의 그것에 부합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것은 홍산문화의 유적과 유물을 통해서 문명의 출현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홍산문화에서 제사장을 정점으로 하여 형성된 사회구성원의 계층화가 진전되었을 뿐만 아니라, 취락 사이에서도 일정한 상호관계와 서열화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해도, 그 정도가 아직 문명의 탄생, 즉 국가의 출현을 의미하는 단계까지 도달했다고 볼 수 없다. 게다가 황제는 신화 속의 인물로서, 漢代 이후에야 중국인의 조상으로서 인격화되는 존재이며, 따라서 홍산문화와 황제와의 관계를 상정하는 것 역시 일종의 넌센스에 불과하다. 현재 중국학계에서 유행하는 홍산문화의 성격에 대한 주장은 사회적, 정치적 요구에 의해 선험적으로 정의되었으며 과도하게 포장된 혐의가 짙다. 그러므로 홍산문화에서 중국 최초의 문명과 황제의 흔적을 찾으려는 시도는 사실에 부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학술적인 엄정성을 담보하고 있지도 않다. 홍산문화를 고조선과 연관시키려는 시도 역시 그와 같은 불합리성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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