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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전환기 지역공동체의 변화: 기독교와 접속한 평양open accessThe Metamorphosis of Local Communities in the Transitional Period: Pyongyang Connected to Christianity

Other Titles
The Metamorphosis of Local Communities in the Transitional Period: Pyongyang Connected to Christianity
Authors
윤정란
Issue Date
Mar-2021
Publisher
한국민족운동사학회
Keywords
평양; 민족주의; 조선의 예루살렘; 기독교; 청일전쟁; 러일전쟁; 메타모포시스; Pyongyang; Nationalism; Joseon' s Jerusalem; Christianity; Sino- Japanese War; Russo-Japanese War; Metamorphosis
Citation
한국민족운동사연구, no.106, pp.171 - 212
Journal Title
한국민족운동사연구
Number
106
Start Page
171
End Page
212
URI
http://scholarworks.bwise.kr/ssu/handle/2018.sw.ssu/40949
ISSN
1226-9980
Abstract
19세기 말 이후 한국의 지역사회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마을의 공간이 새롭게 재편되고 주도세력이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지역공동체의 메타모포시스 현상이 일어났던 것이다. 본고에서는 연구가 상대적으로 미진한 평안도에 위치한 평양을 중심으로 근대전환기 지역공동체의 변화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연구의 지평을 넓히고자 하였다. 반서양 반기독교적인 분위기가 우세했던 평양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예루살렘”, “민족주의 근거지 평양”, “평양은 아직 조선인의 평양”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평양이 이러한 이미지를 가지게 된 역사적 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밝히기 위해 평양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전의 모습, 기독교에 대한 평양민들의 관점 전환과 교세 확장, 그리고 교세 확장으로 인한 평양의 근대 공간으로 재편과 이를 통해 새롭게 부상한 기독교 정치문화권력 등의 순서로 논지를 전개하였다.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894년 청일전쟁 발발 이전까지 평양민들은 기독교의 신을 서양귀신이라고 여기며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청일전쟁 이후 평양민들의 기독교에 대한 시각은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교세가 급격하게 성장하였다. 이와 같이 기독교의 교세가 성장하면서 평양의 중심은 산지대로 옮아가기 시작했다. 평양의 공간은 청일전쟁 이전 대동문 중심에서 청일전쟁 이후 산지대 기독교 공간과 대동문 중심의 공간으로 재편되었다가 러일전쟁 이후에는 산지대의 기독교 공간, 대동문 중심, 평양성 밖 외성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산지대는 영어와 한글을 사용하는 서구문명의 힘과 부, 단군과 기자로 표상되는 평양을 대표하는 민족주의 공간으로 상징되었고, 교회의 새벽종과 주일예배를 알리는 종에 의해 평양민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구역이었다. 대동문 중심과 평양성 밖 신시가지는 일본어를 사용하고 일본식 교육을 하는 학교, 일제 식민통치기관이 자리 잡았으며, 일본의 국교인 신도를 숭배하는 곳이었다.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곳은 평양민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우상숭배를 하는 곳이므로 반드시 평양에서 섬멸시켜야 할 공간이었다. 평양의 기독교인들은 산지대를 중심으로 사회관계망을 형성하였다. 그것은 상인들 중심의 사회관계망이었다. 평양의 기독교 상인들은 평양에 거주하기 시작한 일본 상인들로부터 평양의 상권을 지켜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평양의 기독교인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사회관계망을 형성하고 각종 사회단체를 조직해 민족의 이름으로 일본과 경쟁하면서 평양의 새로운 정치문화 권력으로 부상하였다. 평양에서는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상인 중심의 기독교인들 혹은 이들과 함께 하는 기독교인들이 새로운 정치문화 권력으로 부상했다. 평양은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조선의 예루살렘’과 ‘민족주의 평양’으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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