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tailed Information

Cited 0 time in webof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Metadata Downloads

여말선초 악장의 중세적 관습 및 변이 양상Medieval Customs and Variation of Akjang from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to Early Joseon Dynasty

Other Titles
Medieval Customs and Variation of Akjang from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to Early Joseon Dynasty
Authors
조규익
Issue Date
Oct-2014
Publisher
우리문학회
Keywords
당악; 속악; 아악; 중세적 관습성; 용비어천가; 봉래의; 세종대왕; 악장; Dang-ak; Sog-ak; A-ak; Medieval Custom; Yongbieocheonga; Bongraeeui; King Sejong the Great; Akjang
Citation
우리문학연구, no.44, pp.325 - 351
Journal Title
우리문학연구
Number
44
Start Page
325
End Page
351
URI
http://scholarworks.bwise.kr/ssu/handle/2018.sw.ssu/10806
ISSN
1229-7429
Abstract
통일신라 문무왕대에 도입한 당악과 10세기 이래 송나라에서 도입한 교방악과 詞樂이 합쳐져 형성된 고려의 당악은 ‘당․송․신라․고려’를 포괄하는 음악의 국제적 보편성을 갖추게 되었고, 민간의 노래들을 도입하여 속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당악의 체제를 모범적 선례로 삼음으로써 속악 또한 당악이라는 선진적 음악체계와 상호 텍스트적 관계를 이루게 되었다. 아악에 맞추어 시행한 ‘원구․태묘․사직․적전’ 등의 제례와 선왕들에 대한 제사에서 악장은 고전들로부터 따온 구절들을 ‘짜깁기’한 것들이었으며, 심지어 중국 왕조들의 악장을 송두리째 갖다 쓰는 관습도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조선의 음악체계를 정비한 세종대에 이르러 중국의 아악에 대한 비판적 식견이 표출되었고, 그 바탕 위에서 왕조의 음악 전반이 재검토되었다. 훈민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했고, 훈민정음의 반포 이전에 제작된 <용비어천가>는 六祖의 사적을 바탕으로 노래된 조선 건국의 역사와 ‘왕조영속의 당위성’을 주제로 하는 교훈적 담론이 합쳐진 특수 형태의 악장이었다. 원래 세종은 회례악인 ‘보태평․정대업’을 만들었고, <용비어천가>의 정신과 대차 없는 악장을 올려 불렀는데, 세조대에 이 음악은 종묘제례악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또 세종은 자신이 제작한 거대한 규모의 연향악인 봉래의 악무에 <용비어천가>를 악장으로 올리기도 했다. 그 이전의 악장들이 대부분 짧은 형식에 포괄적이고 막연한 담론으로 일관해 왔다면, <용비어천가>는 큰 규모에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역사적․교훈적 언술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중세적 관습성을 극복하는 의미를 갖는다. ‘중세의 관습’이라는 지속적 요인과 ‘조선의 독자성 추구’라는 변이의 요인을 여말선초 악장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Files in This Item
Go to Link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 Literature > 1. Journal Articles

qrcode

Items in ScholarWorks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Related Researcher

Researcher Cho, Kyu Ick photo

Cho, Kyu Ick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 Literature
Read more

Altmetrics

Total Views & Downloads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