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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음악가 현제명 연구Musician of The Empire, Je-Myoung Hyun

Authors
노동은한윤정김문성
Issue Date
Jun-2011
Publisher
한국음악학학회
Keywords
정치 활동(政治活動); 조선음악가협회(朝鮮音樂家協會); 경성음악협회(京城音樂協會); 조선 총독부(朝鮮總督府); 경성후생실내악단(京城厚生室內樂團); 조선음악협회(朝鮮音樂協會); 조선문예회(朝鮮文藝會); 대동민우회(大同民友會);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國民精神 總動員 朝鮮聯盟); 시국대응 전선사상보국연맹(時局對應 全鮮思想報國聯盟); 대화숙(大和塾);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 Political Activities; Association of Cho-sun Musician; Federation of Association of Keijo; Government-General of Korea; Band of Keijo Chamber Music; Association of Cho-sun Music; Society of Cho-sun Liberal Art; Society of Fellowship; Federation of Cho-sun’s Total National Spirit; Federation of Cho-sun Idealogical Movement; Lodgings of Yamato; Cho-sun Loyal’s Corps; Federation of Cho-sun’s Total Strength
Citation
音.樂.學, v.19, no.1, pp 169 - 222
Pages
54
Journal Title
音.樂.學
Volume
19
Number
1
Start Page
169
End Page
222
URI
https://scholarworks.bwise.kr/cau/handle/2019.sw.cau/46407
DOI
10.34303/mscol.2011.19.1.006
ISSN
1229-5566
Abstract
이 글은 현제명이 1903년에 태어나 1945년 8월 해방이 될 때까지 42년간, 곧 일제 강점기의 현제명의 음악 활동이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활동했는지를 살핀 글이다. 단적으로 현제명은 한국 근대 양악계의 최정상에서 활동한 정치적 음악인이다. 그는 테너로서 당대에 명성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작곡가로, 음악교수로, 음악대학 학장으로, 조선음악가협회 이사장으로서 최정상의 대표로서 사회적 지위를 누렸다. 그는 명실 공히 양악계 악단의 대부였다. 그가 살아온 시대마다 그가 조직하거나 관여한 조직체가 악단을 대표하는 산맥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음악 정치가로서 음악사회를 주도했다. 순수한 악단 조직체이든, 정치적 조직체이든, 친일 조직체이든 그는 항상 정상에서 악단을 주도하며 일본제국과 손잡고 음악정책을 주도한 음악인이다. 본격적인 조직체인 ‘조선음악가협회’가 1931년에 창립될 때 초대 이사장으로 선임되어 한국악단을 대표하였으며, 1938년 조선 총독부와 일본음악인들이 중심적으로 조직한 ‘경성음악협회’에서 간사로 선임되어 조선의 음악인을 대표하였으며, 1942년 조선 총독부의 일본국민음악 정신대(挺身隊)로서 중심적인 연주단체로 재출발한 ‘경성후생악단’의 이사장이었으며, 1944년에 조선 최대의 악단 조직체로 일본인들이 주요 부서를 장악한 조선 총독부 조직체 ‘조선음악협회’의 이사로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그는 미군정 음악정책전개의 정상급 음악인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말기에 ‘쿠로야마 사이아키’(玄山濟明)로 창씨를 개명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해방 직후 미군정이 들어서자마자 그는 ‘로디 현’(Rody Hyun)이라는 이름으로 곧바로 변신하기도 한다. 누가 보기에도 일본인 행세에서 곧바로 미국인 행세로 변신하는 그의 현실적 수완에 감탄한다. 결국, 1945년 12월에 미군정청 장관으로 취임하는 러치(Archer L. Lerch)를 그가 조직한 고려교향악협회 명예회장으로 재빨리 선임하여 대외적으로 널리 알렸다. 그만큼 그의 현실적인 음악 정치력을 따를 사람이 없었다. 그는 실제로 한국민주당 당원으로서, 한국민주당 중앙집행위원회 문교위원으로 활동한 정당 정치가이었다. 정치가 사람들이 생활하는 데 적용되는 규칙이자 지배이고, 통치를 창조하고 유지하며, 또한 수정하고 파괴하는 활동이라면, 음악가 현제명을 통하여 정치적 활동을 본다. 한 음악가로서 현제명은 촉망받은 테너이었지만, 성악가로 활동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적 활동으로 근대 양악계 대부가 되었다. 현제명 자신이 권력을 활용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모두 정치적 활동으로 가능한 것이라면 그의 열정과 헌신과 노력은 평가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1937년 그의 사상적인 전향성명서 발표 이후 대동민우회 ·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 대화숙 · 조선임전보국단 · 국민총력조선연맹 등 조선 총독부가 공인하는 준국가기관에서 사상계 대부로 활동한다. 그리고 탈민족적인 입장에서 일본정신과 그 문화와 대화하는 정치 이념으로 활동한다. 일본제국이 서양제국주의자로부터 아시아를 보호하고 팔굉일우로 결합하는 일본주의로 조선과 아시아를 구하는 대동아공영권 건설이야말로 세계 인류를 지도할 원리로 깨닫고 이제부터 일본정신 사도로서 매진한다는 그 정치적 활동이 현제명의 활동이었다. 이 활동은 경성음악협회 · 조선음악협회 · 경성후생실내악단 · 경성음악학교 등의 음악계 정상임을 상승시켜 한국 최대 최고의 음악 정치가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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