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의 현실과 여성적 화해의 세계 - 윤흥길론

Abstract

윤흥길은 역사의 뒤편에서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수다한 장삼이사들에 애정의 시선을 보내는 작가이다. 그런 그가 주목하는 대상 중 하나는 생의 수난을 감내한 여인들이다. 작가가 파악한 한국의 여성들은, 남성들이 저질러 놓은 파괴적이고 야만적인 전장의 세계에서 나름의 슬기와 생활력으로 수난을 인고하고 극복해가는 존재들이다. 그들에게 고단한 현재를 헤쳐나가게 하는 제일동력은 모성성인데, 그 양상은 다음의 작품들에서 나타난다. 「장마」의 두 노인이 친자식에 대한 모성애를 돌올하게 부각했다면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에서는 모성애가 타자, 그것도 원수의 아들에게까지 확장되는 양상이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에미』에서의 어머니는 출세를 위해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남편대신 남겨진 자식들의 생계와 훈육을 떠맡는다. 윤흥길은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세계를 구원할 여성성의 단초를 파악한다. 그 내면에는 전통적 한국 여인네들이 간직한 여성성의 미덕이 존재한다. 「에미」에 나타난 그것들 중 주요한 내용은 만물을 감싸안는 넉넉한 포용력, 여성적 삶에 대한 사랑, 그리고 어렵사리 자식을 길러냈다는 자부심이다. 아울러 어머니는 성적본능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윤흥길 소설에 나타난 여성들의 자연의 질서와 이치에 대한 감사와 경외는 곧 여성적 원리에 꼭 들어맞는 삶의 방식이다. 그래서 여성은 조포한 남성의 세계를 이겨내고 자연적 순환의 질서에 순응하는 존재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삶의 원리는 곧 자연을 지배하려는 남성적 세계와는 다른 화해와 상생의 세계이다. 윤흥길은 그런 여성적 삶의 원리와 자연과의 친화를 통해 바로 조화로운 세계상을 구현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낮추고 헌신하는 삶 속에서 가능했음을 본고에서 다룬 작품들은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