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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쉬나메> 연구 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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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고운기-
dc.date.accessioned2021-06-23T01:03:01Z-
dc.date.available2021-06-23T01:03:01Z-
dc.date.created2021-01-22-
dc.date.issued2014-07-
dc.identifier.issn1229-8298-
dc.identifier.urihttps://scholarworks.bwise.kr/erica/handle/2021.sw.erica/24991-
dc.description.abstract신라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페르시아 고대 서사시 &lt;쿠쉬나메Kush-nameh&gt;의 출현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기에 족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11세기에 집필된 &lt;쿠쉬나메&gt;에 7세기 중반 무렵의 페르시아와 신라를 잇는 내용이 포함되었음을 확인하였다. 페르시아가 아랍 이슬람 국가에 의해 멸망하자 왕자는 중국으로 망명하고, 거기서도 신변의 위협을 받아 신라에 이른다. 신라의 공주와 결혼한 다음 2세를 낳아, 함께 페르시아 회복을 꿈꾸며 귀국한다. 이런 이야기의 중심 무대가 신라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에게 충격이다. &lt;쿠쉬나메&gt;의 출현은 산발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두 지역의 교류양상을 본격적으로 다뤄볼 기회를 주었다. 이 글에서는 우선 다음과 같은 논의를 진행하였다. 첫째, &lt;쿠쉬나메&gt;가 발견되고 국내에 소개된 과정. 둘째, 그동안 논의된 신라와 페르시아 사이 교류의 양상. 셋째, &lt;쿠쉬나메&gt;에 그려진 신라 풍속의 정합성(整合性) 여부. 특히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신라의 고대 풍속을 재구할 수 있는 자료와 비교하여, &lt;쿠쉬나메&gt;에 나타난 신라의 풍경이 과연 신라-페르시아 간 직접적인 교류의 결과인지 따져보았다. 신라에 대해 &lt;쿠쉬나메&gt;에서는 두 개의 마친 가운데 다른 하나요 섬이라고 하였다. 신라가 반도인 것이 고대인에게는 섬처럼 보였을 수 있다. “그 섬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입구는 매우 좁아서 두 사람조차도 함께 통과할 수 없습니다.”라는 묘사가 그렇다. 거리의 풍경을 묘사한 대목에서 “모든 정원은 튤립으로 가득했고, 튤립들은 향기로웠다. 모든 길과 장터는 잘 단장되어 있었고, 벽은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돌들은 정교하게 쌓여 있어서 돌기둥 사이로는 아무것도 지나갈 수 없었다.”는 것은 신라 제49대 헌강왕 때 “서울부터 전국에 이르기까지 지붕과 담이 즐비하게 이어지고, 초가집이란 한 채도 없었다. 거리에는 연주와 노래 소리 끊이지 않고, 사시사철 맑은 바람이 불고, 비는 적당히 내려주었다.”고 한 『삼국유사』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아비틴과 태후르가 폴로 경기를 벌이는 대목 또한 주목된다. 이것은 김춘추가 그의 강력한 후원자 김유신과 축국(蹴鞠)을 하였다는 기록과 연결된다. 한편 신라를 중심으로 한국의 고대사에서 국제결혼은 그다지 생소한 일이 아니었다. 『삼국유사』에만 해도 13가지의 국제결혼담이 실려 있다. 이 같은 결혼담은 전승하는 설화를 그대로 채록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하겠으나,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는 확대된 해석을 해 볼 수도 있다. 곧, 빈번한 국제결혼이 그다지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던 시대였다는 것이다. 결혼 풍속을 나타내는 기록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경문왕(景文王)이 아직 등극하기 이전, 곧 응렴(應廉)이라는 이름의 화랑이었을 때, 헌안왕의 눈에 들어 그의 사위가 되었다. 결혼 과정에서 헌안왕은 응렴에게 두 딸을 두고 선택하도록 하였다. 이런 풍속이 널리 퍼져 있었는지, 이 자료 하나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예가 &lt;쿠쉬나메&gt; 속의 결혼 과정과 유사한 점을 주목하게 된다. 신라 왕 태후르도 아비틴에게 자신의 딸들 가운데 하나를 택하도록 했다. &lt;쿠쉬나메&gt;에 보이는 신라의 풍속과 풍경이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 좀 더 많은 자료를 통해 살펴보아야 한다. 이를 통해 신라와 페르시아의 교류사가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13세기 세계를 지배했던 몽골의 영향 또한 강하게 남아 있다. &lt;쿠쉬나메&gt;는 작품으로서 뿐만 아니라 역사의 중계자로서 의미 또한 가지고 있다.-
dc.language한국어-
dc.language.isoko-
dc.publisher동아시아고대학회-
dc.title&lt;쿠쉬나메&gt; 연구 서설-
dc.title.alternativeA Study of Kush-Nameh-
dc.typeArticle-
dc.contributor.affiliatedAuthor고운기-
dc.identifier.bibliographicCitation동아시아고대학, v.34, pp.507 - 544-
dc.relation.isPartOf동아시아고대학-
dc.citation.title동아시아고대학-
dc.citation.volume34-
dc.citation.startPage507-
dc.citation.endPage544-
dc.type.rimsART-
dc.identifier.kciidART001895350-
dc.description.journalClass2-
dc.description.isOpenAccessN-
dc.description.journalRegisteredClasskci-
dc.subject.keywordAuthor쿠쉬나메-
dc.subject.keywordAuthor삼국유사-
dc.subject.keywordAuthor신라-
dc.subject.keywordAuthor페르시아-
dc.subject.keywordAuthor풍속-
dc.subject.keywordAuthor서사시-
dc.subject.keywordAuthorクスィナメ-
dc.subject.keywordAuthor三国遺事-
dc.subject.keywordAuthor新羅-
dc.subject.keywordAuthorペルシア-
dc.subject.keywordAuthor風俗-
dc.subject.keywordAuthor敍事詩-
dc.identifier.urlhttps://www.earticle.net/Article/A225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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