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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이도메네우스 신화의 재해석 : 크레비용, 캉프라, 르미에르의 경우Trois Idoménées au XVIIIe siècle en France : Crébillon père, Campra et Lemierre

Other Titles
Trois Idoménées au XVIIIe siècle en France : Crébillon père, Campra et Lemierre
Authors
이충훈
Issue Date
Feb-2021
Publisher
프랑스학회
Keywords
Idoménée; François de Salignac de la Mothe-Fénelon; Prosper Jolyot de Crébillon père; André Campra; Antoine Marin Lemierre; 이도메네우스; 페늘롱; 크레비용; 캉프라; 르미에르
Citation
프랑스학연구, no.95, pp.29 - 57
Indexed
KCI
Journal Title
프랑스학연구
Number
95
Start Page
29
End Page
57
URI
https://scholarworks.bwise.kr/erica/handle/2021.sw.erica/499
ISSN
1226-5128
Abstract
1699년 페늘롱의 텔레마코스의 모험 에 등장한 이도메네우스 신화는 이 소설의 성공과 함께 프랑스는 물론 유럽에 빠르게 퍼졌고, 18세기 비극 및 오페라의 단골 주제가 되었다. 특히 동시대 비극작가였던 크레비용과 음악가 캉프레를 위해 대본을 썼던 당셰가 페늘롱이 부각한 이도메네우스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을 썼다. 이 두 작가는 17세기 후반 고전주의 비극 및 음악비극 전통에 따라 기존 신화에 사랑의 주제를 결합해서 이도메네우스와 그의 아들 이다만테의 갈등의 양상을 부각함으로써 작품의 비극성을 극대화하는데 성공했다. 그렇지만 18세기 후반 프랑스 연극의 중요한 한 경향은 코르네유와 라신의 모델 대신 볼테르의 개혁을 따르는 것이었다. 볼테르의 충실한 제자였던 극작가 르미에르는 크레비용과 캉프레가 창안한 아들과 연적 관계에 놓인 이도메네우스의 모델을 따르지 않고, 아버지, 아들, 아내의 의무가 부딪히는 이념 논쟁을 부각했다. 르미에르는 극중 인물 에리곤을 통해 부당한 희생을 강요하는 신을 따를 필요가 없음을 주장했다. 그런데 신의 명령에 대한 불복종의 가능성은 그 자체로 이도메네우스 신화의 존재의 부정에 이른다. 18세기 내내 유행이 되었던 이도메네우스 신화가 급격히 쇠퇴하며, 급기야 다음 세기에 자취를 감추는 까닭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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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Choong 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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