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tailed Information

Cited 0 time in webof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Metadata Downloads

문헌자료로 본 사비시기의 익산A study on Iksan in the period of Sabi through the analysis of documents

Other Titles
A study on Iksan in the period of Sabi through the analysis of documents
Authors
김영심
Issue Date
2015
Publisher
한국고대사학회
Keywords
geographical description; development of Iksan; King Mu; alternating capital; remnants of Wanggung-Ri; Mireuk-Sa temple; 地理志; 익산 개발; 무왕; 別都; 왕궁리 유적; 미륵사
Citation
한국고대사연구, no.78, pp.57 - 95
Journal Title
한국고대사연구
Number
78
Start Page
57
End Page
95
URI
https://scholarworks.bwise.kr/gachon/handle/2020.sw.gachon/11518
ISSN
1226-6213
Abstract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大東地志』에 이르기까지의 ‘地理志’ 기록은 익산에 대한 고찰에서 핵심적인 자료는 아니지만, 기록의 계보와 인식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먼저 지리지 기록을 검토함으로써 익산지역에 대한 그동안의 인식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인식은 실제와 부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따라서 기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료비판을 전제로 한 문헌적 고찰과 함께 고고자료의 활용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익산에 관한 그간의 연구는 모두 이러한 노력의 소산이었다. 익산 개발이 무왕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위덕왕대 후기 내지 말기, 법왕대까지 올라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왕궁리 유적이다. 미륵사 또한 3院 형식의 대규모의 사찰로서 오랜 기간에 걸쳐 조성된, 익산의 개발 내지 경영을 대표하는 공간이었다. 무왕대에는 왕궁성이 소재한 왕궁면과 미륵사가 소재한 금마면이 중심이 되어 수도 사비에 버금가는 別都로서 기능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益山 遷都 여부를 결정짓기 위해서는 자료의 蘊蓄이 더욱 필요하다. 익산으로의 천도가 이루어졌다면 수도 사비를 대신할 만한 도성의 구조가 확인되어야 한다. 아직 도성이 갖추어야 할 도로시설이나 관아, 거주지 유구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익산의 위상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발굴조사와 연구가 더 체계적으로 꼼꼼히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ETC > 1. Journal Articles

qrcode

Items in ScholarWorks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Altmetrics

Total Views & Downloads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