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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의 유시와 불교정화 운동의 전개President Seung‐man Lee’s Instructions and the Development of the Buddhist Purification Movement

Other Titles
President Seung‐man Lee’s Instructions and the Development of the Buddhist Purification Movement
Authors
이재헌
Issue Date
2014
Publisher
대각사상연구원
Keywords
President Seung‐man Lee; instructions; Buddhist purification movement; married monks; unmarried monks; violence; governmental authority; exclusion; struggle for religious power; Hwanbuyeokjo; 이승만대통령; 유시; 불교정화; 대처승; 비구승; 공권력; 폭력; 배타주의; 종권다툼; 환부역조
Citation
대각사상, no.22, pp.279 - 333
Journal Title
대각사상
Number
22
Start Page
279
End Page
333
URI
https://scholarworks.bwise.kr/gachon/handle/2020.sw.gachon/13202
ISSN
1229-1080
Abstract
이승만 대통령의 7차에 걸친 유시는 불교정화 운동을 시종일관 이끌어갔던 주요 동력이었다. 핵심적 내용은 대처승은 곧 친일승려이니 사찰의 소유권을 다 내려놓고 절 밖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비구승은 곧 애국승려이니 대처승들을 몰아내고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인 사찰재산을 지키며 수리 개량하라는 것이다. ‘유시(諭示)’라는 단어 속에 잘 나타나 있듯이 권위주의적 대통령으로서 명령을 내리는 듯한 논조로 일관하고 있는데, 비구승들에게는 총궐기하여 적극적 행동에 나설 것을 주문하였으며 대처승들에게는 무조건 항복하라는 위협적 통첩을 내렸다. 대통령이 이렇듯 사찰정화를 강제적으로 밀어붙인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 불교계와 사찰을 행정적으로 통제해 왔던 사찰령의 연장선에서 불교를 관리, 통제할 수 있다는 법리적 검토에 기반하고 있다. 대통령의 대처승에 대한 비판적 발언의 수위는 담화가 횟수를 더하면서 점점 더 높아져 갔는데, 특히 비구-대처가 조계사 탈취 등의 문제로 유혈적 폭력으로 맞설 때에는 친공·친일이라는 논리를 내세워서 철저하게 대처를 배제하고 비구승들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하는 의도를 표출하였다. 이러한 이승만대통령의 유시가 불교정화운동의 발발과 전개에 미친 영향력과 남겨진 유산을 비판적으로 평가해 볼 때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대통령의 월권적 행동에 대해 불교계는 전폭적으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둘째, 전통불교의 회복이라는 대의명분이 불교계에 널리 확산되어 있었다. 셋째, 당시 여론은 대체적으로 비구승 쪽에 있었다. 넷째, 불교의 문제를 불교 자체의 논리로 풀지 못하고 정권의 비호 및 공권력, 사법부에 의지하려고 했으며, 극단적인 투쟁과 배척, 그리고 폭력으로 일관했다. 다섯째, 종권다툼의 성격이 크다는 지적에 대한 자성(自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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