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시에 내재한 기독교적 요소와 시적전개

Abstract

한 시인의 시의 성격을 ‘기독교적’이라고 특징짓는 것은 ‘기독교적’ 요소들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경우에 가능하다. 그러나 문학에서 기독교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경험적 내용을 토대로 하는 소재적, 혹은 주제적인 상태이지, 그것에 어떤 형식적인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한 시인의 시를 기독교적 요소로 독해하는 것이 기독교적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얼마만큼의 창조성과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느냐를 발견하는측면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기형도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기형도가 유년기의 큰 사건으로 교회를 향한 발길을 끊었지만, 신앙심 자체가 단기간 내에 사라졌다고 단정할수는 없다. 기독교적 요소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시들이 과작(寡作)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시들을 창작, 발표된 순서대로 살핀 후에 소재, 주제,태도 등에서 일관된 기독교적 문맥이 발견된다면 그것을 그 사유와 창작의 바탕으로서의 기독교적 요소로 설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포도밭 묘지 연작시는 이러한 요소들의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적 표지가직접적으로 노출됐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출된 기독교적표지를 읽어내어 그의 시에 내재한 기독교적 요소의 촉발점(觸發點)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의 시에서 발견되는 자기반성,자기연민, 그의 자전(自傳) 시편에서 볼 수 있는 슬픔을 극복하려는 태도,세계와의 화해의 시도, 「입 속의 검은 잎」의 주제적 의식인 속죄양의식 등을 하나의 문맥 아래 읽어내는 것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