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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支刀의 성격과 제작배경-도교와의 관련성 검토-The character of seven-branched sword and its background of production- focused on the relationship with Taoism -

Other Titles
The character of seven-branched sword and its background of production- focused on the relationship with Taoism -
Authors
김영심
Issue Date
2013
Publisher
한국고대사학회
Keywords
the seven-branched sword; avoiding the bad things; best wishes; Taoism; incantation tool; the relationship between Baekje and Wa; 칠지도; 벽사; 길상구; 도교; 呪具; 백제와 왜의 관계
Citation
한국고대사연구, no.69, pp.91 - 124
Journal Title
한국고대사연구
Number
69
Start Page
91
End Page
124
URI
https://scholarworks.bwise.kr/gachon/handle/2020.sw.gachon/15640
ISSN
1226-6213
Abstract
본고는 백제와 왜 사이의 외교적 기념물로 주고받은 물건이 왜 칠지도와 같은 특이한 형상의 칼이었을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정치적·외교적 차원에 치우친 검토에서는 이러한 의문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문화사적인 검토를 시도했다. 칠지도의 형상과 명문의 내용에 주목해서 칠지도의 성격과 제작배경을 규명하고자 했다. ‘五月十六日丙午正陽’ ‘生辟百兵’ ‘宜供供侯王’ ‘奇生聖音’ ‘七支’ 등 일련의 명문이 辟邪와 吉祥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도교와도 연결됨을 밝혔다. 특히 백제와 왜의 관계에서 논란이 되었던 후왕은 당시 백제와 왜가 상하관계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용어가 아니라 길상구임을 강조하였다. 나뭇가지를 형상화했다고 하는 칼 모양도 呪具로서의 성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칠지도가 제작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백제의 왕실이나 지배층에서 도교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제는 철기제작기술, 한자문화, 도교문화와 같은 선진문물을 가지고 있음을 과시하여 왜의 군사적 지원을 최대한 끌어내고, 우호관계를 맺으려는 의도에서 칠지도를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왜가 철을 비롯한 선진문물을 공급받기를 원했기 때문에 백제에서는 철로 만든 칼, 정치적 권위의 상징이자 도교에서 法器로 여기던 칼에 길상구를 적어 전해주었던 것이다. 백제가 우위에 있었다고 해도 그것을 명문에서 직접 드러내지 않고, 외교적 상징물에 선진문물을 집약해서 보여줌으로써 자신들의 외교적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백제의 고도의 외교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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