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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시대 낙농진흥정책과 낙농업의 발달Park Chung-hee's Dairy Promotion Policy and Development of Dairy Farming

Other Titles
Park Chung-hee's Dairy Promotion Policy and Development of Dairy Farming
Authors
이은희
Issue Date
2018
Publisher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Keywords
낙농업; 유가공업; 기업농; 소규모낙농; 사료; 초지; dairy farming; dairy industry; agribusiness; a small-scale dairy farmer; dairy loan; feed; grassland
Citation
동방학지, no.183, pp.235 - 270
Journal Title
동방학지
Number
183
Start Page
235
End Page
270
URI
https://scholarworks.bwise.kr/gachon/handle/2020.sw.gachon/4932
DOI
10.17788/dbhc.2018..183.008
ISSN
1226-6728
Abstract
1920년대 말부터 지식인 사이에 낙농업 논의가 있었다. 낙농업이 경종농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유가공업과 연관한 농공업을 진작시켜 농업근대화를 이룩하는 영농방식이라고 믿었다. 1965년부터 박정희 정부는 낙농진흥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박정희 정부는 기업농이 낙농업 발달을 선도하고, 소규모 겸업낙농가가 뒤따라가는 낙농진흥계획을 수립했다. 정부의 기업농 육성책에 힘입어 1960년대 후반 도시자본가 사이에 ‘축산 붐’이 일었다. 하지만 기업농은 규모만 클 뿐 경영은 재래적이었다. 낙농진흥으로 젖소수가 증가하며 사료비가 앙등하자 기업농은 초지조성과 낙농업을 포기했다. 낙농선진국과의 차관은 초지조성과 사양기술지도를 중시했다. 1960년대 캐나다, 서독, 뉴질랜드와의 낙농차관은 정부의 예상보다 오래 걸렸고, 규모도 줄었다. 1971년부터 발효된 IDA 차관은 기업농 육성 대신 가족노동력을 주축으로 하는 소규모낙농을 권했다. 정부는 소규모 겸업낙농가 중심으로 낙농단지를 조성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소규모낙농가는 차관으로 제공된 기술지도를 받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집약적 낙농방식을 습득하였다. 그 결과 1970년대 중반 소규모낙농가 생산성이 대규모낙농가보다 높아졌다. 그러자 정부는 1970년대 후반 유가공업체가 전국낙농가를 분할·관리하게 했다. 박정희 집권기 낙농업발달은 한국농업이 근대화 자본주의화 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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