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 권상하 문하의심성 논쟁과 호학의 형성open accessDebates on Human Mind and Nature of Things in Suam(遂菴) Kwon Sangha(權尙夏) School and the Formation of Hohak(湖學)
- Other Titles
- Debates on Human Mind and Nature of Things in Suam(遂菴) Kwon Sangha(權尙夏) School and the Formation of Hohak(湖學)
- Authors
- 김용헌
- Issue Date
- Feb-2020
- Publisher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 Keywords
- 호학; 호락논쟁; 수암 문하; 권상하; 한원진; 이간; Hohak; Kwon Sangha; Suam School; Han Wonjin; Yi Gan
- Citation
- 동아시아문화연구, no.80, pp.143 - 172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동아시아문화연구
- Number
- 80
- Start Page
- 143
- End Page
- 172
- URI
- https://scholarworks.bwise.kr/hanyang/handle/2021.sw.hanyang/146174
- DOI
- 10.16959/jeachy..80.202002.143
- ISSN
- 2383-6180
- Abstract
- 이 논문은 호학(湖學)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있었던 이간 학설이 어떻게 배제되어갔는지를 검토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17세기 초반 호서 지역의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 문하에서는 리기심성론의 세부적인 내용을 두고 논쟁이 시작되었다. 그 논쟁은 먼저 한원진과 최징후(崔徵厚)․한홍조(韓弘祚) 사이에서 시작되었으나 이간(李柬)이 한원진(韓元震)의 견해를 비판함으로써 논쟁의 구도가 한원진과 이간을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고 논쟁의 쟁점도 점차 미발론과 인물성동이론 두 가지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 논쟁 과정에서 변곡점이 된 것은 그들의 스승인 권상하의 개입이다. 권상하는 미발론과 인물성론 모두에서 한원진의 견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한편 제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따르도록 적극적으로 권유하였다. 심지어 이간에게는 “한원진이 미발일 때 선악의 종자가 있다고 말한 것이 무슨 병통이 있기에 그처럼 꾸짖는가?”라고 하여, 그의 한원진 비판이 못마땅하다는 뜻을 분명히 하였다. 그 이후 호서 지역에서는 이간과 현상벽(玄尙璧) 등 일부를 제외하고 다수의 학자들이 인물성이론과 미발기질유선악론으로 기울어져 갔다. 이에 대해 이간은 “선생님의 말씀이 한 번 나오면 사방의 학자들이 그것을 확정된 이론으로 여긴다.”면서 경직된 학문 풍토를 비판했으나, 한원진의 견해가 수암 문하의 주류 학설, 즉 호학으로 자리 잡게 되는 대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 18세기 초반을 넘어서면서 심성 논쟁의 전선이 자연스럽게 호서의 학자들과 낙하의 학자들 사이에 형성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호락논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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