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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兆騫과 寧古塔, 그리고 조선Zhaoqian Wu, Ningguta and Joseon

Other Titles
Zhaoqian Wu, Ningguta and Joseon
Authors
이승수
Issue Date
Apr-2017
Publisher
한국언어문화학회
Keywords
Zhaoqian Wu(吳兆騫); Mudanjiang(牧丹江); Balhae(渤海); Ningguta(寧古塔); Geography of Northern Region; 吳兆騫; 牧丹江; 渤海; 寧古塔; 북방지리
Citation
한국언어문화, no.62, pp.87 - 118
Indexed
KCI
Journal Title
한국언어문화
Number
62
Start Page
87
End Page
118
URI
https://scholarworks.bwise.kr/hanyang/handle/2021.sw.hanyang/152555
ISSN
1598-1576
Abstract
중국 黑龍江省 牧丹江市 일대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의 중요한 지리공간이다. 하지만 발해의 멸망 이후 오랫동안 이 지역은 역사의 기록에 오르지 않았다. 이후 이 일대는 청나라 초기 유배객들이 영고탑에 유배되면서 역사적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하였다. 본고는 1659년부터 22년 동안 영고탑에서 유배객으로 생활했던 吳兆騫의 문집과 관련 기록을 통해, 당시 이 지역의 여러 지리적 정황을 고찰한 것이다. 논의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오조건은 전형적인 蘇州 문사로 집안과 재주가 뛰어나 젊어서부터 교만하다는 평을 받았다. 둘째, 오조건은 1657년 科場案에 연루되어 1년 여 북경에서 구금 생활을 했으며, 1658년 영고탑에 유배되었다. 유배 노정 중 北京-瀋陽 구간은 조선후기 연행로와 일치하며, 瀋陽-寧古塔 구간은 아직 역로가 개설되기 전이었다. 셋째, 당시 영고탑은 최악의 유배지였는데, 청나라 정세가 점차 안정되는 1676년경부터는 점차 도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넷째, 오조건은 지금의 遼寧省 이북 일대를 조선의 옛 지역으로 간주했고, 발해 상경성 터를 찾아 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겼으며, 당시 조선과의 인적 물적 교류 상황을 시문 속에 그려놓았다. 우리는 이를 통해 당시 조선과 영고탑의 교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다섯째, 오조건의 귀환에는 그가 지은 <長白山賦> 및 顧貞觀과의 우정이 계기가 되었다. 전자는 당시 長白山과 松花江을 성역화려는 청조의 崇祖 의식과 맞물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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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EANG SU
COLLEGE OF HUMANITIES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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