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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년 남산 아래 유몽인의 처지와 심경 -「終南散閑錄」 散考-Situations and Feelings of Yu Mongin under Mt. Namsan in 1608 -Investigation on ‘Jongnamsanhanrok’-

Other Titles
Situations and Feelings of Yu Mongin under Mt. Namsan in 1608 -Investigation on ‘Jongnamsanhanrok’-
Authors
이승수
Issue Date
Aug-2013
Publisher
근역한문학회
Keywords
Yu Mongin; Mt. Namsan; Psychological Exile; Impulse of Death; Call by the Dead; 유몽인; 남산; 심리적 유배; 죽음 충동; 死者의 호명
Citation
한문학논집(漢文學論集), v.37, pp.31 - 53
Indexed
KCI
Journal Title
한문학논집(漢文學論集)
Volume
37
Start Page
31
End Page
53
URI
https://scholarworks.bwise.kr/hanyang/handle/2021.sw.hanyang/162194
DOI
10.17260/jklc.2013.37..31
ISSN
1225-1313
Abstract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인 유몽인은 1608년 1월 28일 도승지에 임명되었다. 그의 나이 50세 때의 일이다. 도승지는 왕의 지척에서 왕명 출납의 업무를 총괄하는 직책으로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된다. 하지만 유몽인은 이 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이틀 뒤에 선조가 승하하고 광해군이 즉위했는데, 권력 지형이 크게 바뀌면서 유몽인은 12일 만에 관직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이로부터 유몽인은 이듬해 4월까지 관직을 얻지 못하였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남산 아래 은거하면서 39수의 시를 남겼다. 이 글은 39수의 시를 텍스트로 삼아 당시 유몽인의 처지와 심경을 고찰한 것이다. 유몽인은 심각한 소외감에 시달렸으며, 그 결과 심리가 크게 위축되어 죽음 충동에 사로잡히거나 죽은 자를 호명하곤 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가 남달랐던 유몽인은 당시의 상황을 용납하기 어려웠으며, 이는 자학과 집권자에 대한 혐오로 표출되었다. 이러한 정서적 소모를 겪으며 유몽인은 극심한 노쇠감에 시달렸다. 그가 처한 것으로 인식했던 궁벽진 산골도, 풍설이 몰아치는 곳도 기실은 그의 내면에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삶은 1611년까지 변화 속에서 지속된다. 유몽인의 독특한 기질은 정치적 부침을 겪으면서 뚜렷하게 드러났고, 이는 그의 문학 세계와 긴밀하게 관련된다. 이 글은 그중의 일단을 조명한 결과이다. 유몽인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장가이자 지식인이며 정치가로 매우 복합적 인물이다. 특정 시간을 단위로 하는 세부적 조명은 유몽인의 삶과 문학을 입체적으로 재구하기 위한 유효한 방법의 하나로, 다른 시기들에 대한 고찰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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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EANG SU
COLLEGE OF HUMANITIES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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