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의 『朝鮮公論』 사설에 나타난 조선통치론과 내선융화론Rule over Chosun and Japan-Chosun Conciliation Found in the Editorials of 『Chosun Gongron』 in the 1920’s
- Other Titles
- Rule over Chosun and Japan-Chosun Conciliation Found in the Editorials of 『Chosun Gongron』 in the 1920’s
- Authors
- 최혜주
- Issue Date
- Sep-2017
- Publisher
- 한국민족운동사학회
- Keywords
- 『朝鮮公論』; 사이토 총독; 이시모리 히사야; 재조일본인; 조선통치론; 내선융화론; 조국연장주의; 『Chosun Gongron』; Saito proconsul; Ishimori hisaya; Japanese settler in colonial Chosun; Rule over Chosun; Japan-Chosun Conciliation; Joguk Yeonjangjuui
- Citation
- 한국민족운동사연구, no.92, pp 51 - 88
- Pages
- 38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한국민족운동사연구
- Number
- 92
- Start Page
- 51
- End Page
- 88
- URI
- https://scholarworks.bwise.kr/hanyang/handle/2021.sw.hanyang/203560
- DOI
- 10.19162/KNM.92.2017.9.02
- ISSN
- 1226-9980
- Abstract
- 『朝鮮公論』은 마키야마 고조(牧山耕藏)가 1913년 4월 창간한 이래 1944년 11월까지 총 380호를 발행한 최장수 월간 종합잡지다. 이 잡지에는 일본의 정관계, 언론계, 교육계, 법조계, 경제계 등 지식인들의 담론이 담겨있다. 이들은 조선통치정책에 일정하게 영향을 미쳤던 정치세력들이었다. 이 잡지의 1910년대 사설에서는 무단통치를 비판하고 무관총독 폐지문제를 거론하였다. 조선 통치를 위해서는 조선인 동화가 중요하며 그것은 일본인 이주와 조선인 사상연구, 내선인 결혼, 조선인 改名, 일본어 보급 등을 통해 정신적 동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1920년대는 3ㆍ1운동을 겪은 일제가 1910년대 동화정책의 전략을 문화통치로 바꾼 시기이다. 동화정책을 유지하면서도 이를 점진적으로 실행하고 차별대우를 완화하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1920년대에 들어 ‘동화’라는 말 대신에 ‘융화’라는 말이 채용되었다. 이 논문에서는『조선공론』의 사설에서 1920년대의 식민지 조선을 어떻게 인식했으며 일본의 지식인들이 조선 문제에 대해 어떠한 주장을 펼쳤는지 조선통치론과 내선융화론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910년대의 논조와 비교해 보면 무단통치에 대한 비판과 옹호가 계속되고 있으며 군비축소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내선융화’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었다.
데라우치 무단통치의 가장 큰 문제는 헌병제도였다. 3ㆍ1운동에 대한 대응책의 하나로 제기된 군비축소 문제에 대한 논란과 함께 헌병제도 폐지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나왔다. 문관 총독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견해와 총독 정년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한편 조선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문제가 논란이 되었다. 金心石, 이노우에 등은 참정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미야자키는 그것은 이상론에 불과하며 중추원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시모리도 내지연장주의에서 ‘조국연장주의’로 나갈 것을 주장하였다.
‘내선융화’를 내걸고 조선인을 회유하기 위해서는 우선 조선 청년을 사상적으로 선도하고 조선인의 민족성을 연구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조선인의 역사ㆍ국어ㆍ수신 교육과 공학 교육, 청년단 설립과 조선인물 양성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내선융화’의 방법으로 일본인 이주를 장려하여 경제동화를 달성하고 통치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조선인 가운데 우량인물을 양성하고 초등교육을 보급하여 ‘내선융화’의 실적을 올릴 것을 강조한다. 조선민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재조선 일본인의 개조와 각성을 촉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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