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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발인반차도>와 발인 행렬The Funeral Procession of Empress Myeongseong through the illustrated records

Other Titles
The Funeral Procession of Empress Myeongseong through the illustrated records
Authors
박계리
Issue Date
2016
Publisher
미술사학연구회
Keywords
고종高宗; 국장國葬; 대한제국大韓帝國; 명성황후明成皇后; 발인반차도發靷班次圖; 의궤儀軌; Gojong; State Funeral; Korean Empire; Empress Myeongseong; Balinbanchado (Illustration of the Funeral Procession); Uigye (The Royal Protocols of the Joseon Dynasty)
Citation
미술사학보, no.47, pp.7 - 26
Journal Title
미술사학보
Number
47
Start Page
7
End Page
26
URI
https://scholarworks.bwise.kr/hongik/handle/2020.sw.hongik/13421
DOI
10.15819/rah.2016..47.7
ISSN
1598-1258
Abstract
명성황후 발인의식은 황금색과 빛을 중심으로 슬픔의 행렬이 아닌 축제의 행렬임을 대내외에 드러낸 의례였다. 치욕의 죽음을 황제국의 선포를 통해 극복해내고 있음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고종의 국장 발인행렬과 명성황후 발인행렬을 비교해보니 이점은 더욱 명확해졌다. 명성황후 발인반차도를 통해 발인 행렬을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니, 황금색 의장물들은 신백을 모시는 신련의 앞 부분을 화려하게 엄호하고 있었으며, 빛은 대여를 중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몸과 정신이 하나였던 인간에게서 몸과 신의 분리되는 과정이 발인 행렬이다. 몸은 무덤에 묻히나, 신은 다시 돌아온다는 점에서 몸이 아닌 신의 격을 황색으로 격상하여 엄호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새롭게 나타난 황금색 의장물들의 도상의 전범은 명과 청나라의 도상이 같이 등장하고 있었다. 이 각 도상들을 보다 엄밀히 분석해볼 결과, 이러한 혼재와 그 속에서의 선택은 청나라의 『황조예기도식』의 예를 따르면서 도식이 없을 경우에는 『명집례』의 따르는 것으로 변통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이는 ‘명’을 따를 것인가 ‘청’을 따를 것인가의 판단 기준이 무엇이 ‘적통‘인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서 시작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게 한다. 아관파천까지 단행했던 고종의 태도를 보면 그의 인식지도 안에서 중화중심의 세계관은 이미 희미해졌음을 읽어낼 수 있다. 그의 관심은 중화주의의 해체와 더불어 서양까지 포함된 세계지도를 인식지도 안에 설정하고, 이 변화된 시공간 속에서 어떻게 제국주의 열강 속에서 대한제국이 국가적 존엄을 간직한 채 살아남을 수 있는가에 있었다. 따라서 스스로 황제국임을 선포하는 행위의 목적은 중화주의 시스템의 속성인 황제와 왕이라는 서열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우리 안에 황제가 있음을 선포함으로써 중화시스템을 극복해내는 방식으로 중화시스템을 파괴를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일본의 천황제가 시작되는 메이지 유신부터 일본의 근대기를 설정하는 바와 같은 맥락이다. 또한 주목되는 점은, 신여, 신배요여, 견여, 대여 등 죽은 자의 육신을 담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전통적인 예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명나라의 예와, 청나라의 예를 일부 결합시킨 조합은, 어디에도 선례를 찾을 수 없는 대한제국만의 발인 행렬을 만들어냈다. 이는 고종의 “옛규범을 근본으로 하고 새로운 형식을 참작한다.(舊規僞本參以新式)”는 그의 선언이 어떻게 시각언어로서 대내외적으로 드러내었는지 확인해볼 수 있었다. 국장에서 발인 행렬은 죽은 자를 기리고자 모여든 사람들과 함께 긴 시간을 걸으면서, 색과 빛, 향과 곡성을 통해 오감을 통해 죽은 자를 체험하고 기억하는 시간이다. 고종은 이러한 국장의 발인 행렬을 통해, 주권이 무참하게 능멸되었던 명성황후시해사건의 치욕이 극복되었음을, 황금색과 수많은 빛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황제국의 의례로 드러냄으로써 대내외에 선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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