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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고공예에 관한 연구 - 강화 화문석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Korean Straw Handicraft - Focused on Kangwha Hwamunseok -

Other Titles
A Study on The Korean Straw Handicraft - Focused on Kangwha Hwamunseok -
Authors
정경연유금자
Issue Date
2011
Publisher
사단법인 한국조형디자인협회
Keywords
straw handicraft; Kangwha hwamunseok; wancho; nohkyeongsohjik; an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asset; 초고공예; 강화 화문석; 완초; 노경소직; 중요무형문화재
Citation
조형디자인연구, v.14, no.4, pp.23 - 36
Journal Title
조형디자인연구
Volume
14
Number
4
Start Page
23
End Page
36
URI
https://scholarworks.bwise.kr/hongik/handle/2020.sw.hongik/19980
ISSN
1229-1412
Abstract
초고공예(草藁工藝)는 원시인류가 자신들의 자연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자연재료를 가지고 생활용구를 제작하여 생활에 활용한 것에서 유래한다. 한국의 초고공예는 한국의 자연과 그 자연조건을 기반으로 한 한국인의 문화적 자산이다. 한국의 초고공예에는 한국이 벼농사 국가로서 농사의 잉여물인 볏짚의 활용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볏짚과 더불어 한국의 자연에서 얻은 섬유질이 강한 풀의 줄기나 덩굴, 나무껍질 등이 사용되었다. 화문석은 초고공예품 중에서 특수한 지배 계층을 위해서 제작된 것으로, 고려시대 이전부터 여러 지역에서 생산되었으나 지금은 전라남도 함평과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겨우 그 맥을 잇고 있다. 강화군의 화문석이 오늘날처럼 유명해진 시기는 1700년 이후이다. 강화군 교동면의 꽃돗자리가 오늘날 강화 화문석의 전신이다. 그러나 이 꽃돗자리는 지금의 강화 화문석과는 다른 용수초를 가지고 짠 등메를 의미한다. 강화는 고려시대 몽고 침략 이후, 고려의 수도 역할을 하면서, 중국에 진상품과 왕실과 특수층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 화문석을 제작하였다. 그 결과, 강화의 화문석은 용수초 대신 완초를 가지고 노경소직에 시문하는 새로운 방식을 개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완초는 강화군의 송해면, 양사면, 길상면, 내가면 등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그중에서 당산리, 양오리 일대는 완초공예품을 제작하는 민가가 가장 많은 곳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3호 완초장 이상재, 완초 화문석 기능 전수자 서순님, 그리고 완초 보존회 회원들의 완초공예품 제작 활동이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강화군의 완초공예는 조상대대로 해 오던 완초공예에 대한 애정이 큰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연구자는 동시대인들에게 생활에서 멀어진 우리의 소중한 유형문화적 자산인 화문석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고 재해석하여 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가치 창출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 연구는 이런 관점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초고공예품 중에서 강화 화문석의 가치와 제작 실태와 그리고 그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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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Fine Arts > Department of Textile Art and Fashion Design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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