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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翊聖의 東淮 別墅A Study on ShinYigseong(申翊聖)'s manor of neighboring capital city, Donghoi(東淮)

Other Titles
A Study on ShinYigseong(申翊聖)'s manor of neighboring capital city, Donghoi(東淮)
Authors
김은정
Issue Date
2009
Publisher
한국고전문학회
Keywords
申翊聖; 東淮; 二水[兩水]; 別墅; 先塋; 近畿田庄; 문화적 장치; ShinYigseong(申翊聖); Donghoi(東淮); Yeesu(二水); Villa; an ancestral graveyard; Manor of neighboring capital city; cultural device
Citation
고전문학연구, no.36, pp.225 - 257
Journal Title
고전문학연구
Number
36
Start Page
225
End Page
257
URI
https://scholarworks.bwise.kr/hongik/handle/2020.sw.hongik/22039
DOI
10.17838/korcla.2009..36.008
ISSN
1225-1445
Abstract
東淮는 申翊聖(1588∼1644)이 새로 先塋으로 조성한 二水(지금의 양수리) 일대를 지칭한다. 본래 平山 申門은 金浦에 선영을 두고 있었는데, 신익성은 부인 貞淑翁主와 부친 申欽을 모두 새로 조성한 선영에 장사지내고 그 일대를 계획적으로 정비하고 확장하였다. 특히 二水 유역을 ‘東淮’라 명명하고 자호로 삼아, ‘東淮’의 명칭과 二水 일대는 곧 신익성을 가리키게 된다. 신익성이 동회를 정비하고 확장한 것은 선영을 새로 조성하기 위한 것이면서, 또한 近畿 선영을 중심으로 田庄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기도 하다. 당시 조선에서는 전란의 복구 과정에 사대부들이 선영을 중심으로 대규모의 전장을 독점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으며, 사회경제적으로 점차 상업 중시의 산업구조로 변화해 가는 양상을 띠고 있었다. 이 시기에 이미 물산과 정보가 도시, 특히 서울로 집중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유력한 사대부들 사이에 京邸와 별도로 近畿의 선영을 중심으로 田庄을 가꾸는 것이 유행이었다. 한편, 그들은 近畿 別墅를 경영하면서 別墅圖나 이를 기념한 시문을 마련하여 그곳에 문화적 명성을 덧보태고자 하였다. 최근에 미술사학계에서 신익성의 東淮를 그린 별서도와 여러 문인이 칭송한 시문이 기록된 서화첩이 보고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서화첩은 東淮라는 전장을 명승명소화하려는 문화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신익성은 駙馬로서 누리는 자유로움과 풍요로움뿐만 아니라 남다른 예술적 취향을 바탕으로 東淮를 문화의 중심지로 삼기도 하였다. 즉 東淮는 신익성 주변의 문인뿐만 아니라 鳳林大君과 같은 왕실 관계자들이 풍류를 즐기는 곳이면서, 그가 소장한 도서와 서화를 공유하는 문화 중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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