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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 왕위 계승의 상징적 재현'文孝世子輔養廳契屛'(1784)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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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유재빈-
dc.date.available2020-07-10T05:39:23Z-
dc.date.created2020-07-06-
dc.date.issued2017-
dc.identifier.issn1225-2565-
dc.identifier.urihttps://scholarworks.bwise.kr/hongik/handle/2020.sw.hongik/6683-
dc.description.abstract본 논문은 <문효세자보양청계병>의 회화적 분석과 역사적 고증을 통해 당시 궁중회화의 정치적 의미에 집중한 논문이다. <문효세자보양청계병>은 1784년 1월 15일, 정조의 첫 아들인 문효세자가 보양관과 처음으로 만나 인사하는 상견례를 그렸다. 보양관이 서문을 쓰고 보양청에 계병 한 좌를 두었으니 이 병풍의 제작은 보양청에서 주관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계병에 연시를 지어 올리고 실제로 병풍을 나누어 가진 사람은 정승이었던 보양관 2명을 포함한 7명의 정 1품 대신들이었다. 이처럼 특정 관청이나 조직이 아니라 대신들이 계병을 발의한 것은 예외적인 일이다. 이는 이 계병이 조직의 결속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 행사에 대한 최고 관료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 제작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대신들이 이 계병을 발의하게 된 배경에는 원자 정호 과정에서 이들이 담당한 역할과 관련이 있다. 문효세자는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원자로 추대되었는데 여기에는 소론 대신들의 역할이 컸다. 처음에는 원자 정호를 미루던 정조도 일단 일이 결정되자 원자 보양관으로 양 정승을 임명하였으며 대신들을 모두 상견례에 참석하도록 하는 등, 유례없는 조처를 내렸다. 원자의 보양관 상견례는 결국 순조로운 왕권 계승을 바라는 정조와 이 과정에서 공로를 선점하려는 대신들의 문제의식이 만난 상징적인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대신들이 계병을 제작한 목적은 계병 1폭에 있는 서문과 연작시에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다. 서문에 의하면 보양관 이복원과 김익을 비롯한 7명의 대신들은 상견례에 참석한 후 별도로 빈청에 모여 선찬을 나누었으며 이 날의 행사를 기념하는 연작시를 짓고, 이를 계병으로 나누어 가진다고 하였다. 서문과 연작시는 원자의 성장을 축원하고 이 행사가 왕실만이 아니라 온 나라의 경사임을 노래하였다. 연작시의 공적인 형식과 내용은 이 시가 비단 대신들 간의 소회일 뿐 아니라 정조를 의식한 발언임을 보여준다. <문효세자보양청계병>의 내용과 표현은 서문과 연작시가 담지 못한 이 계병의 목적을 더 구체적으로 재현하였다. 상견례는 동쪽에는 원자, 서쪽에 보양관이 자리하여, 세자가 스승을 모시는 의례의 구도를 따랐다. 그러나 이 병풍에서는 예외적으로 동쪽을 상위에 두는 구도를 취하였다. 그 결과 원자와 보양관이 동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원자가 두 보양관 위에 있는 삼각구도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삼각 구도와 그 정점에 있는 구름에 가린 붉은 박공은 미래의 군주가 신하들에 의해 받들어지고 있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상견례 밖의 공간은 행사가 일어난 주변을 넓게 조망해줄 뿐 아니라 이 행사의 의미를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2폭의 석축이 높은 전각은 ‘왕실’, 6폭의 돌담과 시속 인물은 ‘백성’의 대유적 표현이라고 짐작된다. 결국 이는 본 행사가 왕실과 조정, 민간에 영향을 미치는 경사임을 보여준 것이다. 이처럼 상견례 행사는 어린 원자와 그를 보살필 보양관의 만남일 뿐 아니라 미래 왕위 계승자인 원자와 그를 추대한 대신들 간의 만남이기도 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문효세자보양청계병>은 상견례에 대한 참석자의 기념물일 뿐 아니라 군신간의 공조를 확인하는 징표라고 해석할 수 있다.-
dc.language한국어-
dc.language.iso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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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publisher한국미술사학회-
dc.title정조대 왕위 계승의 상징적 재현'文孝世子輔養廳契屛'(1784)을 중심으로-
dc.title.alternativeSymbolic Representation of the Succession to the Throne in the Reign of King Jeongjo: with a focus on Screen Painting of Crown Prince Munhyo Having an Introduction Ceremony at Boyangcheong (1784)-
dc.typeArticle-
dc.contributor.affiliatedAuthor유재빈-
dc.identifier.doi10.31065/ahak.293.293.201703.001-
dc.identifier.bibliographicCitation미술사학연구, v.293, no.293, pp.5 - 31-
dc.relation.isPartOf미술사학연구-
dc.citation.title미술사학연구-
dc.citation.volume293-
dc.citation.number293-
dc.citation.startPage5-
dc.citation.endPage31-
dc.type.rimsART-
dc.identifier.kciidART002210975-
dc.description.journalClass2-
dc.description.journalRegisteredClasskci-
dc.subject.keywordAuthorKing Jeongjo-
dc.subject.keywordAuthorCrown Prince Munhyo-
dc.subject.keywordAuthordocumentary painting-
dc.subject.keywordAuthorscreen painting-
dc.subject.keywordAuthorcourt painting in the Joseon dynasty.-
dc.subject.keywordAuthor정조-
dc.subject.keywordAuthor문효세자-
dc.subject.keywordAuthor계병-
dc.subject.keywordAuthor궁중행사도-
dc.subject.keywordAuthor기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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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 > Aesthetics & Art Histor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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