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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 왕위 계승의 상징적 재현'文孝世子輔養廳契屛'(1784)을 중심으로Symbolic Representation of the Succession to the Throne in the Reign of King Jeongjo: with a focus on Screen Painting of Crown Prince Munhyo Having an Introduction Ceremony at Boyangcheong (1784)

Other Titles
Symbolic Representation of the Succession to the Throne in the Reign of King Jeongjo: with a focus on Screen Painting of Crown Prince Munhyo Having an Introduction Ceremony at Boyangcheong (1784)
Authors
유재빈
Issue Date
2017
Publisher
한국미술사학회
Keywords
King Jeongjo; Crown Prince Munhyo; documentary painting; screen painting; court painting in the Joseon dynasty.; 정조; 문효세자; 계병; 궁중행사도; 기록화.
Citation
미술사학연구, v.293, no.293, pp.5 - 31
Journal Title
미술사학연구
Volume
293
Number
293
Start Page
5
End Page
31
URI
https://scholarworks.bwise.kr/hongik/handle/2020.sw.hongik/6683
DOI
10.31065/ahak.293.293.201703.001
ISSN
1225-2565
Abstract
본 논문은 <문효세자보양청계병>의 회화적 분석과 역사적 고증을 통해 당시 궁중회화의 정치적 의미에 집중한 논문이다. <문효세자보양청계병>은 1784년 1월 15일, 정조의 첫 아들인 문효세자가 보양관과 처음으로 만나 인사하는 상견례를 그렸다. 보양관이 서문을 쓰고 보양청에 계병 한 좌를 두었으니 이 병풍의 제작은 보양청에서 주관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계병에 연시를 지어 올리고 실제로 병풍을 나누어 가진 사람은 정승이었던 보양관 2명을 포함한 7명의 정 1품 대신들이었다. 이처럼 특정 관청이나 조직이 아니라 대신들이 계병을 발의한 것은 예외적인 일이다. 이는 이 계병이 조직의 결속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 행사에 대한 최고 관료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 제작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대신들이 이 계병을 발의하게 된 배경에는 원자 정호 과정에서 이들이 담당한 역할과 관련이 있다. 문효세자는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원자로 추대되었는데 여기에는 소론 대신들의 역할이 컸다. 처음에는 원자 정호를 미루던 정조도 일단 일이 결정되자 원자 보양관으로 양 정승을 임명하였으며 대신들을 모두 상견례에 참석하도록 하는 등, 유례없는 조처를 내렸다. 원자의 보양관 상견례는 결국 순조로운 왕권 계승을 바라는 정조와 이 과정에서 공로를 선점하려는 대신들의 문제의식이 만난 상징적인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대신들이 계병을 제작한 목적은 계병 1폭에 있는 서문과 연작시에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다. 서문에 의하면 보양관 이복원과 김익을 비롯한 7명의 대신들은 상견례에 참석한 후 별도로 빈청에 모여 선찬을 나누었으며 이 날의 행사를 기념하는 연작시를 짓고, 이를 계병으로 나누어 가진다고 하였다. 서문과 연작시는 원자의 성장을 축원하고 이 행사가 왕실만이 아니라 온 나라의 경사임을 노래하였다. 연작시의 공적인 형식과 내용은 이 시가 비단 대신들 간의 소회일 뿐 아니라 정조를 의식한 발언임을 보여준다. <문효세자보양청계병>의 내용과 표현은 서문과 연작시가 담지 못한 이 계병의 목적을 더 구체적으로 재현하였다. 상견례는 동쪽에는 원자, 서쪽에 보양관이 자리하여, 세자가 스승을 모시는 의례의 구도를 따랐다. 그러나 이 병풍에서는 예외적으로 동쪽을 상위에 두는 구도를 취하였다. 그 결과 원자와 보양관이 동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원자가 두 보양관 위에 있는 삼각구도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삼각 구도와 그 정점에 있는 구름에 가린 붉은 박공은 미래의 군주가 신하들에 의해 받들어지고 있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상견례 밖의 공간은 행사가 일어난 주변을 넓게 조망해줄 뿐 아니라 이 행사의 의미를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2폭의 석축이 높은 전각은 ‘왕실’, 6폭의 돌담과 시속 인물은 ‘백성’의 대유적 표현이라고 짐작된다. 결국 이는 본 행사가 왕실과 조정, 민간에 영향을 미치는 경사임을 보여준 것이다. 이처럼 상견례 행사는 어린 원자와 그를 보살필 보양관의 만남일 뿐 아니라 미래 왕위 계승자인 원자와 그를 추대한 대신들 간의 만남이기도 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문효세자보양청계병>은 상견례에 대한 참석자의 기념물일 뿐 아니라 군신간의 공조를 확인하는 징표라고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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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 > Aesthetics & Art Histor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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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 Jae 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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