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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인물인식 - 『해동신감』을 중심으로 -King Jeongjo's a Perceptions of figures revealed in 『Haedongshingam』

Other Titles
King Jeongjo's a Perceptions of figures revealed in 『Haedongshingam』
Authors
박인호
Issue Date
2012
Publisher
한국실학학회
Keywords
정조; 김육; 해동명신록; 해동신감; 유교적인 교훈적 역사의식; 충절; 의리; King Jeongjo; Kim Yuk; 『Haedongmyeongsinlok』; 『Haedongshingam』; the educational cognition of Confucianism; the loyalty; the right justice
Citation
한국실학연구, no.23, pp.123 - 158
Journal Title
한국실학연구
Number
23
Start Page
123
End Page
158
URI
https://scholarworks.bwise.kr/kumoh/handle/2020.sw.kumoh/2667
ISSN
1598-0928
Abstract
金堉이 편찬한 『해동명신록』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은 正祖는 1772년 李商逸과 함께 『해동명신록』을 축약하여 『해동신감』을 편찬하였다. 『해동명신록』은 신라에서 조선까지의 문신․학자들의 행적을 수록한 인물전기집으로, 명신 총 299명이 수록되어 있다. 정조는 『해동명신록』의 서술 형식과 내용을 그대로 따르면서 『해동신감』을 편찬하였다. 『해동신감』은 『해동명신록』에 수록된 299인 가운데 191명을 재수록하였으며, 108명은 제외하였다. 재수록된 자는 대부분 충열과 절의에 관련된 인물들이었다. 내용에 있어서도 정조는 인물의 행적 가운데 어릴 때부터의 개인적 성장과정, 단순한 관력과 같은 이력 사항, 그리고 개인적인 측면에서 부정적인 부분 등은 대부분 생략하고 대신 충성, 도덕, 의리, 효도 등의 측면에서 크게 현창할 만한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남기고 있다. 즉 선한 내용을 남겨 稱揚함으로써 후대에 본보기가 되도록 하려는 정조의 편찬 방향에 따라 이러한 부분이 집중적으로 남게 된 것이다. 정조가 인물을 평가하는 기준은 충성과 절의, 바른 의리, 학문과 문장, 직분, 예설, 명신, 지조와 충열, 효행, 학문 성취와 후학 양성 등이었다. 이러한 점이 정조가 생각하였던 신하의 직분이었으며 인물을 평가하는 기준이었다. 정조가 『해동신감』을 만든 것도 옛 것에 근거하여 현재를 비추어 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정조의 인물에 대한 평가기준이나 역사인식은 유교적인 교훈적 역사인식 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정조는 비록 경학이나 기술학 등 학문 분야에서는 실학적 측면이 크게 나타나지만 역사학의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실학적인 면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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