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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전반기 對明 海路使行에 관한 행차 분석Analysis of Trips of Envoys, sent from Joseon(朝鮮) to Ming(明) dynasty by Sea, during the First Half of the 17th Century

Other Titles
Analysis of Trips of Envoys, sent from Joseon(朝鮮) to Ming(明) dynasty by Sea, during the First Half of the 17th Century
Authors
박현규
Issue Date
2011
Publisher
한국실학학회
Keywords
Trips of Envoys by Sea; Joseon(朝鮮) dynasty; Ming(明) dynasty; Dengjhou(登州); Juehuadao(覺華島); the Sea God; 海路使行; 使行錄(燕行錄); 朝鮮; 明; 登州; 覺華島; 海神
Citation
한국실학연구, no.21, pp.117 - 148
Journal Title
한국실학연구
Number
21
Start Page
117
End Page
148
URI
https://scholarworks.bwise.kr/sch/handle/2021.sw.sch/16883
ISSN
1598-0928
Abstract
본 논문에서는 17세기 전반 조선의 대명(對明) 해로 사행 중 해로 구간의 행차 모습을 살펴보는데 중점을 두었다. 후금이 북쪽 요동을 점거하자, 조선과 명나라는 다시 한 번 해로 사행을 열었다. 해로 사행은 1621년(광해군 14)에 유간(柳澗) 일행부터 1637년(인조 15)에 김육(金堉) 일행까지 모두 20여 차례 이루어졌다. 해로 노선은 크게 등주(登州, 蓬萊) 노선과 각화도(覺華島, 菊花島) 노선으로 나눠진다. 각화도 노선은 1629년(인조 7)에 원숭환(袁崇煥)의 방침에 따라 처음 행해졌고, 도중에 약간의 이탈이 있었지만 해로 사행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루어졌다. 한반도에서 출항지는 처음에 안주(安州) 청천강(淸川江)에서 시작되었으나 곧이어 선사포(宣沙浦)에서 바뀌었고, 정묘호란 이후 석다산(石多山)으로 옮겼으며, 이듬해 다시 평양 대동강으로 옮겼다. 곧이어 사신들의 신분에 따라 석다산과 대동강으로 나누어 출발시켰다. 선사포에서 등주까지의 항해 기간은 평균 22.4일이 걸렸고, 석다산에서 각화도까지는 평균 31.0일이 걸렸다. 조선 조정은 등주 노선을 선호했다. 사행 선단은 통상적으로 4척∼6척으로 이루어졌고, 각 선박 당 승선 인원은 대략 40명∼80명 정도이다. 사행 선박은 각 수역권별로 할당해서 동원되었고, 수부도 각 수역권 별로 차출되었다. 사행 구성원을 보면 사신, 역원과 수부로 나누어지는데, 그 중에서 수부가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후금과의 전투를 대비하기 위해 군사들도 포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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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 Department of Chinese Language and Literature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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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Hyun Kyu
SCH Media Labs (Deparment of Chinese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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