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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張良相의 南海 <東征磨崖碑> 고찰A Study of “Dongjeong maae bi(東征磨崖碑)” built by Zhang Yangxiang(張良相) in Namhae(南海)

Other Titles
A Study of “Dongjeong maae bi(東征磨崖碑)” built by Zhang Yangxiang(張良相) in Namhae(南海)
Authors
박현규
Issue Date
2017
Publisher
동아인문학회
Keywords
壬辰倭亂; 張良相; 南海倭城; 東征磨崖碑; 釜山平倭碑銘; 명 수군; 陳璘;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1598(壬辰倭亂); Zhang Yangxiang(張良相); Japanese castle in the Namhae(南海倭城); Dongjeong maae bi(東征磨崖碑); Busan pyeongwae bimyeong(釜山平倭碑銘); Ming navy; Chen Lin(陳璘)
Citation
동아인문학, no.38, pp.143 - 166
Journal Title
동아인문학
Number
38
Start Page
143
End Page
166
URI
https://scholarworks.bwise.kr/sch/handle/2021.sw.sch/8323
ISSN
1598-6888
Abstract
본 논문은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 수군 장수 張良相이 한반도에서 활동한 행적과 유적에 대해 고찰했다. 장양상은 당초 정유재란 초기 명 군부가 대규모 수군을 파견하는 작전에 따라 한반도에 들어올 계획이었으나, 사실상 전쟁이 끝난 뒤인 1599년(선조 32) 5월에 수병 1천 5백 명을 거느리고 한반도에 들어왔다. 그 후 鰲川의 忠淸水營, 南海의 南海倭城 등을 거쳐 부산 해역으로 나가 일본군이 다시 바다를 건너오는 것을 방어하는 작전에 나섰다. 1599년(선조 32) 10월에 명군 철수 계획에 따라 수군을 거느리고 귀국 해로에 나섰다가 계절의 영향으로 한동안 황해도에 머물었고 이듬해 여름에 한반도 해역을 벗어나 중국 대륙으로 들어갔다. 1599년(선조 32) 10월에 남해 船所 바닷가에 명 수군의 전승기념비 성격을 띤 <東征磨崖碑>를 세웠다. 장양상이 <동정마애비>를 세운 목적은 한편으로 명 수군이 세운 위업을 만방에 널리 알리고, 다른 한편으로 그 자신도 명 수군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는 숨은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동정마애비>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釜山平倭碑銘>이 있다. 조선 실록사관은 <부산평왜비명>이 실제 공적과 어긋나고 헛된 명성만 추구한다고 비판을 가했다. 18세기 이후에 조선 인사들이 행한 <동정마애비> 평가는 反淸崇明의 시대적 흐름에 따라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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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 Department of Chinese Language and Literature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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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Hyun Kyu
SCH Media Labs (Deparment of Chinese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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