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tailed Information

Cited 0 time in webof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Metadata Downloads

심산 김창숙의 유교 인식과 독립운동의 전개A Study of Kim, Changsook’s Confucian Perception and Independence Movement

Other Titles
A Study of Kim, Changsook’s Confucian Perception and Independence Movement
Authors
김현수[김현수]
Issue Date
2018
Publisher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Keywords
Changsook Kim; Independence Movement; Hanjoo’s School; Consciousness of Saving the Country; Elimination of Human Desire& Preservation of Natural Principle; the Petition of the Korean Confucians to the Versailles Peace Conference; 김창숙; 독립운동; 한주학파; 사명의식; 알인욕존천리(遏人欲存天理); 파리장서
Citation
한국학논집, no.70, pp.121 - 152
Indexed
KCI
Journal Title
한국학논집
Number
70
Start Page
121
End Page
152
URI
https://scholarworks.bwise.kr/skku/handle/2021.sw.skku/22257
DOI
10.18399/actako.2018..70.005
ISSN
1738-8902
Abstract
심산 김창숙은 유교 정신에 근본하여 독립운동을 전개시킨 인물이다. 본고는 심산의 독립운동의 근거가 되는 사상적 측면과 더불어 독립운동의 변화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피고 그 요인・계기를 살피는 것이다. 우선 심산은 사상적으로 한주학파의 문인들과 교류(수업)을 통해서 한주학파를 계승하였다. 더불어 이론(성리설)만을 추구하는 경향에서 벗어나 의리를 적극적으로 사회・국가・세계에 적용・실천하려는 사유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요체를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함(遏人欲存天理)’으로 보았다. 심산 사상에서 ‘사명의식’과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함’은 독립운동 및 평생의 가치 기준에 중요한 원칙으로 작용하였다. 그의 독립운동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1919년 3・1운동 이후 ‘파리장서운동’을 통한 외교 활동이고, 둘째는 비록 실제로 행해지지 않았지만,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고 군사기지를 건설하려는 방향이다. 셋째는 무력 및 의열투쟁 방식이다. 심산은 기본적으로 전통적 유학에 근거하여 구국활동을 하였지만, 또한 끊임없이 현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방향성을 모색하였다. 전통적 가치관・세계관에서 시작했지만, 1919년 3・1운동 이후 곽종석과 더불어 서구를 재인식하고 ‘파리장서’를 작성하는 등 외교적 독립운동을 한 것이고, 이후에 경제적 빈곤을 느끼면서 결국 독립운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해외의 경제적 기반 마련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였다. 마지막으로 독립자금을 모금하기 위해서 국내로 들어왔다가 국내 인심이 절망적임을 느끼고 이를 고취하기 위해서 단기적 수단으로 의열투쟁을 주장한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nfucian Studies & Eastern Philosophy > Confucian Studies & Eastern Philosophy > 1. Journal Articles

qrcode

Items in ScholarWorks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Altmetrics

Total Views & Downloads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