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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중반 백제・신라의 대외정책 비교A Comparison of the Foreign Policy of Baekje and Silla during the Mid-7th Century

Other Titles
A Comparison of the Foreign Policy of Baekje and Silla during the Mid-7th Century
Authors
정동준[정동준]
Issue Date
2018
Publisher
신라사학회
Keywords
7세기 중반; 백제; 신라; 대외정책; 나당동맹; 이중외교; middle part of 7th century; Baekje; Silla; Foreign Policy; Silla-Tang Alliance; Dual Diplomacy
Citation
신라사학보, no.42, pp.33 - 56
Indexed
KCI
Journal Title
신라사학보
Number
42
Start Page
33
End Page
56
URI
https://scholarworks.bwise.kr/skku/handle/2021.sw.skku/23186
ISSN
1738-2742
Abstract
이 글에서는 7세기 중반 백제・신라의 대외정책에 대하여 검토해 보았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630~640년대 전반 백제・신라의 대당외교를 사신 파견의 빈도와 그 내용으로 판단해 보면, 빈도에서 백제가 앞서는 데다가 내용면에서도 당에게 보다 많은 신뢰를 얻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지는 못하였고, 특히 645년 당 태종의 고구려 원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이 백제의 이중외교적 태도를 문제로 삼기 시작하였고, 전쟁 이후 백제가 대당외교를 일시적으로 중단함으로써 백제에 대한 당의 신뢰는 급속도로 낮아지기 시작하였다. 반면 신라의 경우 전쟁과정에서 백제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수만의 지원군을 파견함으로써 당의 신뢰를 획득하는 데에 성공하였고, 전쟁 이후 백제가 사신 파견을 중단함으로써 오히려 대당외교라는 측면에서 백제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이 때에 648년 김춘추가 당에 파견되어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벌임으로써 당 태종의 신뢰 속에서 나당동맹이 결성되었고, 이후 국내에서 한화 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됨으로써 양국간의 신뢰를 확실히 구축하였다. 그러한 상황은 태종이 사망하고 고종이 즉위한 후에도 변화하지 않아서, 651년 당 고종이 백제에 보낸 조서를 보면, 백제가 사신 파견을 재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일방적으로 신라의 편을 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당동맹의 결성은 648년 김춘추의 입당이 직접적 원인이기는 하지만, 645년 이후 백제가 사신 파견을 중단함으로써 당과 신라의 접근을 저지할 수 없었던 상황이 바탕에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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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al Arts > Department of Histor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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