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전쟁의 사상적 기반과 유교The Ideological Foundation and Confucianism of Tonghak Peasant War
- Other Titles
- The Ideological Foundation and Confucianism of Tonghak Peasant War
- Authors
- 배항섭[배항섭]
- Issue Date
- 2017
- Publisher
- 역사학회
- Keywords
- 교조신원운동; 척왜양; 고부봉기; 동학농민전쟁; 동학농민전쟁의 사상적 기반; movement of posthumous exoneration for the founder of the Tonghak; opposition to the Japanese and the Western; Gobu uprising; Tonghak Peasant War; ideological basis of the Tonghak Peasant War
- Citation
- 역사학보, no.236, pp.1 - 39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역사학보
- Number
- 236
- Start Page
- 1
- End Page
- 39
- URI
- https://scholarworks.bwise.kr/skku/handle/2021.sw.skku/31866
- DOI
- 10.16912/tkhr.2017.12.236.1
- ISSN
- 1225-1615
- Abstract
- 이글은 교조신원운동 시기부터 제2차 농민전쟁 시기까지 동학교도 혹은 농민군의 격문이나 통문을 통해 농민군의 사상적 기반이 변화해 나가는 모습을 살핀 것이다. 교조신원운동 시기 동학교도돌의 목표는 교조의 신원이나 포교의 자유 등 종교적 요구에서 척왜양으로 변화하였다. 이어 고부봉기 시기부터는 치자층의 탐학이나 부정부패를 반대하는 방향으로 변해갔다. 제2차 봉기에서는 다시 척왜양이 전면에 등장한다. 정체성 면에서 동학과 관련된 내용은 점차 약화되는 경향을 보이다가 제2차 농민전쟁 시기에 들어 다시 동학과 관련된 요소가 강화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동학농민전쟁의 사상적 기반을 동학의 ‘개벽’ 사상에서 찾는 경우도 있었고, 동학사상과의 직접적인 연결을 회피하면서도 동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 혹은 이단적 해석이 농민전쟁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그러나 농민군들의 요구나 지향이 반드시 세계관의 대전환을 요구할 만큼 “개벽”적인 것은 아니었다. 농민군들은 유교적 사회질서에 대해 정면 도전한 적이 없으며, 전제왕권을 자명한 전제로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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