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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군의 <무장기포>와 <무장포고문>에 대한 이해의 변천과정 고찰

Authors
배항섭[배항섭]
Issue Date
2016
Publisher
호서사학회
Keywords
동학; 동학농민전쟁; 무장기포; 무장포고문; 한우근; Donghak; Donghak Peasants War; Mujang uprising; Mujang declaration; Woo Keun HAN
Citation
역사와 담론, no.79, pp.99 - 133
Indexed
KCI
Journal Title
역사와 담론
Number
79
Start Page
99
End Page
133
URI
https://scholarworks.bwise.kr/skku/handle/2021.sw.skku/41072
ISSN
1226-8089
Abstract
<茂長起包>와 <茂長布告文>에 대해서는 농민전쟁 당시 혹은 직후부터 그 사정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자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들이 본격적으로 발굴된 것은 해방 이후, 특히 동학농민전쟁 100주년에 즈음하여 자료에 대한 대대적인 자료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면서부터였다. 식민지 시대에 들어 ‘근대적’ 방법에 의한 역사연구가 시작되면서 고부민란과 농민전쟁을 분리하여 이해하려는 연구가 나오기 시작하였고,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무장포고문>의 내용을 인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무장기포>나 <무장포고문>이 무장에서 일어난 일임을 확인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다보하시 기요시의 연구(1940) 이후 <무장포고문>의 발포장소와 시기가 무장인 것으로 이해하기 시작하였으나, 그 시기가 3월 20일이 아니라, 4월 7일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한 농민군이 정읍, 흥덕, 고창을 거쳐 4월 9일 무장을 재차 점령한 이후라는 주장이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매우 오래 동안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무장기포>와 <무장포고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한우근의 선구적 연구를 거쳐 신용하에 의해 이루어졌다. 물론 현재에도 이와 다른 주장을 제기하는 연구자들이 없지 않으나, 활용하는 자료나 논지의 전개 면에서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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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 of East Asian Studies > ETC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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