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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전후 중국국민당정부의 한반도 구상과 한국

Authors
김지훈[김지훈]
Issue Date
2015
Publisher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Keywords
Korea-Chnia relations; Korea’s provisonal govermment; Scheme of Korean Peninsula; Chinese National Party; Chiang Kai-shek; Kim Gu; Rhee Syngman; 한중관계;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반도 구상; 중국국민당; 장제스(장개석); 김구; 이승만
Citation
군사, no.96, pp.31 - 70
Indexed
KCI
Journal Title
군사
Number
96
Start Page
31
End Page
70
URI
https://scholarworks.bwise.kr/skku/handle/2021.sw.skku/45583
ISSN
1598-317X
Abstract
1944년 9월 국민당정부는 외교부를 중심으로 한국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였다. 여기서 한반도를 국제적으로 공동관리하거나 고문관을 파견하여 통치하거나 즉각 독립시키자는 여러 가지 방안들의 장단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미국‧영국 등과 함께 중국군을 한반도에 파견하여 군정을 실시하고,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반도에 친중정부를 구성하려 하였다. 중국은 한국이 친중적인 독립국으로 성장하여 일본의 권토중래를 막고 소련이 한국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장제스는 한국을 국제사회가 공동관리하는 문제에 소극적이었는데 이는 중국의 동북지역의 주권을 회복하는데 장애가 될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이었다. 1945년 광복 직후 중국국민당은 한국에 대한 구상은 미국이 추진한 미국, 영국, 중국, 소련 네 나라에 의한 공동관리였다. 광복 후에도 국민당정부의 군사위원회를 중심으로 한국문제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국민당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지원하여 한국정부를 구성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광복 후에도 중국 국민당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김구에 대한 지원을 지속하였다. 이 지원 속에는 한국의 독립과 정부 수립에 대한 정치적 지원과 더불어 경제적 지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미소군정기 한반도의 정치적 지형 속에서 중국이 기대했던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은 점차 저하되었다. 이와함께 한반도에서 중국국민당정부의 영향력도 갈수록 축소되었다. 1947년 4월 이승만의 중국 방문 이후 국민당정부는 이승만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시작하였다. 국민당정부의 태도변화는 한국 정계에서 이승만이 가진 영향력을 평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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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al Arts > Department of Histor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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