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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헌 홍대용의 북경방문 이후 華夷평등과 그 우열의식- 담헌서 의 「의산문답」과 김종후에게 보낸 편지를 중심으로-

Authors
이종우[이종우]
Issue Date
2015
Publisher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Keywords
화이평등; 화이우열; 예의; 풍속; 북경방문; Equality between the Chinese culture and the Bavarian; Superiority and Inferiority between Cental culture and the Bavarian; Ethic; Culture; Visiting Beijing.
Citation
동방학, no.33, pp.207 - 225
Indexed
KCI
Journal Title
동방학
Number
33
Start Page
207
End Page
225
URI
https://scholarworks.bwise.kr/skku/handle/2021.sw.skku/46238
ISSN
1598-1452
Abstract
지금까지 대다수 연구자들은 담헌 홍대용이 북경방문 이전에 중화는 우월하고 오랑캐는 열등하다고 여겼으나 북경방문 이후에 화이평등으로 변화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홍대용은 북경방문 이전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화이(華夷)에 대한 우열의식이 있었다. 단지 그 대상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물론 북경방문이후에 쓴 의산문답 에서 화이의 풍속은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경방문 이후에 김종후에게 보낸 편지인 「여김직재종후서」와 「우답직재서」에서 여전히 중화의 풍속은 우수하고 오랑캐의 그것은 열등하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의산문답 에서 그는 주도(周道)를 실천하면 중화이고, 그렇지 않으면 오랑캐라고 하여 전자를 높이고, 후자를 물리쳐야 한다는 존양지의(尊攘之義)를 말한다. 즉 주도의 실천여부에 따라 화이를 구분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여전히 그의 의식 속에 화이의 풍속에 대하여 평등하면서도 우열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또한 주도의 실천여부에 따라 화이의 우열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주도를 특정 지역의 특수한 윤리가 아니라 보편적인 윤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결국 그는 북경방문을 통하여 청나라의 문명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그곳이 오랑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체두변발의 풍속은 짐승과 같은 것으로서 오랑캐라고 여겨 그 우열의식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풍속으로서 화이를 구분할 수 없고 이 때문에 평등하다는 의식도 혼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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