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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 문자자료로 본 신라의 유교경전 문화

Authors
권인한[권인한]
Issue Date
2015
Publisher
구결학회
Keywords
金石文; 木簡; 論語; 儒家經典的接受與學習; 太學; 國學; 金石文; 木簡; 論語; 儒敎經典의 受容과 學習; 太學; 國學
Citation
구결연구, no.35, pp.23 - 51
Indexed
KCI
Journal Title
구결연구
Number
35
Start Page
23
End Page
51
URI
https://scholarworks.bwise.kr/skku/handle/2021.sw.skku/47101
ISSN
1226-6019
Abstract
이 글은 금석문․간독 등 출토 문자자료를 중심으로 신라에서의 유교경전의 수용과 학습 양상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고찰함을 목표로 한 것이다. 2장에서는 낙랑, 고구려, 백제 지역에서 출토된 죽간․금석문․목간 자료들을 통하여 신라 이전 한반도에서의 유교문화의 수용 정도를 가늠해보았다. 그 결과 論語 의 전래가 BC 1세기경에까지 소급될 뿐만 아니라, 고구려․백제에서의 유교문화도 각각 5, 6세기에 이르러 이미 상당한 발전을 이룬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교육 기관의 설립과 漢籍의 유통에 관한 중국측 기록들을 통하여 신라 이전 한반도 유교문화의 수용 양상을 太學이라는 국가 교육기관의 설립, 論語 와 五經( 詩經 ․ 書經 ․ 易經 ․ 禮記 ․ 春秋(左氏傳) ), 三史( 史記 ․ 漢書 ․ 後漢書 )와 三國志 , 文選 등의 漢籍의 수용과 유통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3장에서는 신라의 6세기 금석문 중에서 그 동안 論語 의 직접인용 사례로 주목받아온 울진 봉평신라비, 진흥왕 순수비에서의 “獲罪於天”, “脩己而安百姓”이라는 구절이 論語 뿐만 아니라, 三國志 에도 나타난다는 점에서 論語 의 직접인용 사례로 확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에 따라 6세기 신라 금석문들에 쓰인 한자어구들에 대하여 중국 고전들( 論語 +五經, 三史+ 三國志 )에서의 쓰임새와 비교한 후에 유교경전의 수용 정도를 가늠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진흥왕 순수비에서 史書에는 없고 儒經에만 나오는 ‘乾道’라는 어휘뿐만 아니라, 儒經에도 史書에도 없는 ‘純風, 强戰’이라는 어휘들까지 찾아진다는 점에서 그 이전 금석문들과 분명한 차이점이 나타나므로 진흥왕대(540~576)에 이르러 신라사회에 유교경전들이 본격 유통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진흥왕 6년의 國史 修撰 기사, 圓光法師의 유년기 修學에 관한 기사 및 壬申誓記石(552년 추정)에서의 儒經名 등을 들어 당시 신라에서 유통된 漢籍의 범위가 고구려․백제에서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이어서 경주 안압지 187호 목간, 인천 계양산성․김해 봉황동 論語 목간 등 7~8세기 목간 자료들을 통하여 國學을 중심으로 한 통일신라시대의 유교경전 학습 열풍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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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al Arts >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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