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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在外 외국인의 한국시가론과 그 의미The Foreign Poetry Discours in late 19th Century and its Meanings

Other Titles
The Foreign Poetry Discours in late 19th Century and its Meanings
Authors
이상현[이상현]윤설희[윤설희]
Issue Date
2014
Publisher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Keywords
근대지식으로서의 문학; 민족(국민)성 담론; 언어내셔널리즘; 한국시가율격론; 한국시가의 번역; 『한국지』(KOPEИ(1900));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 『한국서지』(Bibliographie Coréenene(1894~1896; 1901)); 오카쿠라 요시사부로(岡倉由三郎); 「조선의 문학」(朝鮮の文學(1893));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한국의 시」(Korean Poetry(1896)); 『가곡원류』; 『남훈태평가』; National discourse; Language Nationalism; Korean Poetric Meter Theory; Translation of Korean Poetry; KOPEИ(1900); Maurice Courant; Bibliographie Coréenene(1894~1896; 1901); Okakura Yoshisaburo(岡倉由三郎); “Korean Literature[(朝鮮の文學)(1893)]”; Gagokwonryu; Namhuntaepyeongga
Citation
동아시아문화연구, no.56, pp.309 - 345
Indexed
KCI
Journal Title
동아시아문화연구
Number
56
Start Page
309
End Page
345
URI
https://scholarworks.bwise.kr/skku/handle/2021.sw.skku/54940
ISSN
2383-6180
Abstract
이 연구의 목적은 재외에서 출판된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 1865~1935)과 오카쿠라 요시사부로(岡倉由三郎, 1868~1936) 그리고 러시아 대장성의 한국시가(詩歌) 관련 기록물을 분석, 검토하는 것에 있다. 특히, 19세기 말 외국인들의 한국 시가론이 근대지식으로 유통된 한 사례로 3편의 논저를 검토함으로, 19세기 말 한국의 시가가 문학이라는 근대적인 지식으로 정립되는 과정과 그 의미를 고찰하는 것에 있다. 나아가 그 구성과정 속에서 소거된 외국인이 한국이라는 낯선 이문화와 접촉했던 흔적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것에 있다. 러시아 대장성의 『한국지』는 1900년까지의 서구인 한국학 논저를 집성한 저술이다. 한국에 관한 종합지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던 단행본 저술 『한국지』에서 한국문학은 하나의 주제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는 전시기 서양인 저술과는 다른 큰 변별점이었다. 『한국지』의 편자들이 ‘한국문학’ 주제항목을 구성하는 데 가장 많이 참조한 저술은 쿠랑의 질서화 해준 논의였기 때문이다. 또한 충실한 서지조사 및 실증작업을 통해, ‘한국에는 자국어로 된 고유성과 높은 문예성을 지닌 국민문학이 부재하다’는 당시 서양의 한국문학담론을 논증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쿠랑, 오카쿠라 요시사부로의 한국시가 관련 기록물에는 『한국지』가 미처 포괄하지 못한 두 사람의 현장적 체험이 존재했다. 그것은 서구적 근대문학개념에는 낯선 한국의 시가문학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두 사람의 곤경이었다. 동시에 이는 서구적 근대문학개념에 의거해 한국의 국문시가가 본래의 음악적 향유 혹은 노랫말이 아닌 문학적 텍스트로 전환되는 순간이며, 한문시가와 분리되어 한국의 국민문학으로 재조명받는 지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가와 외국인의 접촉 그리고 그 번역의 현장은 『한국지』에 새겨지지 못했다. 쿠랑은 한국시가문학을 문학텍스트로 재규명하기 위해 국문 시가의 주제와 율격문제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였다. 국문시가가 담아내고 있는 주제적 특성 및 중국 문학의 영향 관계를 지적하는 한편, 비록 규칙적인 운이나 자수 등 율격의 실상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시조를 문학적 텍스트로 인식하고 그 문학적 형식을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쿠랑이 『한국서지』 「서설」을 작성할 때 참고문헌으로 제시한 오카쿠라 요시사부로의 논문은 19세기 방각본 가집 『남훈태평가』 소재 시조 작품을 번역한 최초의 사례였다. 이는 일본-서구 동양학 학술 네트워크에 한국 시가를 알린 최초의 시도였다. 그는 한국 시가에 사용된 언어-한국어, 한자어-표현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외국문학이자 번역의 대상으로서 한국 시가작품의 존재를 인식했으며 최대한 본래 시가작품의 모습을 번역․재현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두 사람의 시도는 개신교 선교사의 시가론과 함께 『한국지』에 거의 수용되지 않았다. 일례로 유일하게 『한국지』에 수용된 헐버트의 시가론은 한국 시가의 연행 환경의 실제에 가까웠을 뿐 아니라, 번역 자체가 서구인에게 낯선 한국 시가 작품과의 교감을 모색하는 훌륭한 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쿠랑에 비해 많은 부분이 배제되었던 것이다. 이는 한국의 시가를 문학이라는 근대지식으로 소환하려 했던 『한국지』의 지향점을 잘 말해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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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al Arts >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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