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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기 문화공작대의 의제와 성격The agenda and character of Munhwagongjakdae in the Liberation Period

Other Titles
The agenda and character of Munhwagongjakdae in the Liberation Period
Authors
조은정[조은정]
Issue Date
2014
Publisher
상허학회
Keywords
Munhwagongjakdae; Federation of Korean Cultural Organization; Korean Writers Alliance; composite art festival; cultural popularization movement; conversion; Oh Jang-hwan; Jo Yeong-chool; Ham Se-deok; 문화공작대; 조선문화단체총연맹; 문학가동맹; 종합예술제; 문화대중화운동; 전향; 오장환; 조영출; 함세덕
Citation
상허학보, v.41, pp.283 - 327
Indexed
KCI
Journal Title
상허학보
Volume
41
Start Page
283
End Page
327
URI
https://scholarworks.bwise.kr/skku/handle/2021.sw.skku/56768
ISSN
2005-7261
Abstract
이 글은 해방기 문화공작대 활동의 전체상을 실증적으로 복원하고 이것과 관계된 여러 가지 문제들-정치적 변동과 맞물린 좌익예술계의 활동방향, 참여 예술인들의 내면과 이후 행보, 대중화의 효과와 영향 등-에 대해 시론적으로 논의를 제출하였다. 조선문화단체총연맹은 남한에서 거의 대부분의 진보적 활동이 불법화되고, 상당수의 예술인들이 월북한 시점인 1947년 중반에 남한의 지방 곳곳에 문화공작대를 파견했다. 해방 이후 지속적으로 문화대중화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실천적 방침을 논의해왔던 문학가동맹을 중심으로 한 좌익문화진영은, 2차 미소공동위원회 재개를 통해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공위축하종합예술제’를 개최했던 것이다. ‘인민을 위한 문화’ ‘문화를 인민에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총 4개대로 나뉜 예술인들은 지방민들을 위한 종합예술제를 기획했다. 이 행사는 연극, 영화, 음악, 만담, 시낭송, 이동전람회, 사진전 등 각 분야를 망라한 종합적 예술제였고, 동원된 예술인들만 해도 150여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1947년 6월 30일 제1대가 경상남도로 출발한 것을 시작으로 충청도, 강원도, 경상북도에 파견되어 특히 부산, 대구, 대전 등에서 상당한 관객을 유치하며 성공적인 공연을 펼쳤다. 그러나 계속되는 검열과 테러로 인해 예술제는 수난사로 요약될 만큼 난관에 봉착했고, 미소공위도 사실상 결렬됨으로써 문화공작대는 8월초까지 활동할 수 있었다. 이러한 문화공작대 활동은 정치사회적 정세 속에서 좌익문화진영이 선택할 수 있었던 최후의 가장 적극적인 문화적 실천이었다는 점, 연극공연의 내용이 일제식민지배의 민족 수탈의 공동기억을 환기시키면서 민족감정에 호소한 점이 특징적이다. 또한 예술활동에 대한 탄압이 가시화되고 지방 민중들과 직접 대면한 경험은 참여 문화인들의 전향과 월북 문제에 직간접적인 관련을 가지는데, 이는 차후 별도의 논문으로 보완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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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al Arts >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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