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tailed Information

Cited 0 time in webof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Metadata Downloads

‘홍경래’와 ‘항우’의 문학적 형상화에 관한 비교연구Comparative Study on Literary Configuration of 'Hong Kyung Rae' and 'Hang Woo'

Other Titles
Comparative Study on Literary Configuration of 'Hong Kyung Rae' and 'Hang Woo'
Authors
정영문
Issue Date
Apr-2012
Publisher
한민족어문학회
Keywords
홍경래; 신미민란; 장사; 항우; 비장미; Hong Kyung Rae(洪景來); Riot in the year of Shinmi(辛未民亂) man of great strength(壯士); Hang Woo(項羽) resoluteness(悲壯美)
Citation
한민족어문학(구 영남어문학), no.60, pp.35 - 58
Journal Title
한민족어문학(구 영남어문학)
Number
60
Start Page
35
End Page
58
URI
http://scholarworks.bwise.kr/ssu/handle/2018.sw.ssu/12852
ISSN
1229-0742
Abstract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가 18세기 이후 활발하게 나타났고 있다. 이는 민란과 당쟁 등의 사회적 혼란이 원인이 되어 조선 사회가 변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의 사회질서가 붕괴되고 새로운 질서가 자리하지 못하는 혼란기를 극복하는 과정에 역사의 주체로 등장한 민중들이 자신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새로운 영웅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영웅으로 제시되는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 관련고사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역사의 승리자이거나, 후대의 추앙을 받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구조로 전환하는 과정에 생존당시에는 강한 힘을 발휘하였지만 결국에는 패배한 인물들도 문학으로 형상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를 대표할만한 인물로 ‘홍경래’를 들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홍경래’가 문학에서 형상화해 가는 양상을 ‘항우’와 비교해 보았다. 홍경래는 세상에 대한 열망으로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였고, 이런 시도가 반체제적이었기에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의 도전은 그가 살았던 시대와 평안도에서 한양에 이르는 공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신미민란도 유학적 세계질서를 붕괴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기에 실패하였고, 민란을 이끌었던 홍경래만 문학으로 형상화될 수 있었다. 이때 홍경래는 유학적 가치가 배제된 상태에서 ‘장사’의 이미지만 덧입고 등장하고 있다. 이는 항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항우와 홍경래는 ‘장사’의 이미지로 남았기에 비록 다양한 장르에서 소재적인 측면이나 전기형태로 구성되었지만, 그 대부분은 ‘슬픔’, ‘이별’, ‘죽음’ 등의 부정적인 감성과 결합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영웅이 주는 ‘숭고’함보다는 ‘비장’함이 강조되었다. 이미지가 고정된 항우와는 달리, 홍경래는 유교적 질서가 붕괴된 근대이후에 들어와서 ‘민중영웅’으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Files in This Item
Go to Link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 Literature > 1. Journal Articles

qrcode

Items in ScholarWorks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Related Researcher

Researcher Jeong, Young moon photo

Jeong, Young moon
College of Humanities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 Literature)
Read more

Altmetrics

Total Views & Downloads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