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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天日錄』의 한 讀法How to read 『Jocheonilrok』

Other Titles
How to read 『Jocheonilrok』
Authors
조규익
Issue Date
Sep-2019
Publisher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Keywords
Choi Hyeon; Jocheonilrok; Mungyeonsageon; Practical Mind-Set; Records of Enlightenment; 최현; 조천일록; 문견사건; 실용주의; 경세적 기록
Citation
한국문학과 예술, no.31, pp.319 - 383
Journal Title
한국문학과 예술
Number
31
Start Page
319
End Page
383
URI
http://scholarworks.bwise.kr/ssu/handle/2018.sw.ssu/35170
ISSN
1976-8400
Abstract
인재 최현1563∼1640)은 당대 성리학의 학풍에 매몰되지 않고, 민생과 안보 등 국가의 현실문제들에 대하여 실용적인 가치를 추구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성리학으로 입문했음에도 성리학에 대한 저술을 남기지 않았고, 많은 疏箚들을 통해 인재등용・민생・국방 등 정치의 요체를 임금에게 간언해왔으며, 무엇보다 임진・병자 두 전쟁에 참전한 점은 그가 공리공담에 매몰되어 있던 당대 유자들의 범주로부터 많이 벗어나 있던 존재임을 입증한다. 본고에서 「陳時務九條疏」와 「弘文館條陳八務箚」를 분석하여 時務에 대한 그의 관점을 찾고, 그의 관점에 입각하여 『조천일록』의 두드러진 내용들을 분석하고자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사행기간 내내 매일매일 聞見事件들을 기록하고 私日記를 부대함으로써 자신의 견해와 철학을 담고자 했는데, 그것들 모두는 ‘중국에 대한 정보’이자 조선의 국내 정책이나 외교 정책의 수립에 큰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었다. 제도・정책・사회풍조・민생 등의 문제, 오랑캐와의 갈등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안보 문제, 관리들의 貪風이나 예법의 문란을 중심으로 하는 이데올로기적 기강 해이의 문제, 학자나 武將을 중심으로 하는 인물 등용의 문제, 문화∙역사에 대한 평가와 해석의 문제 등 중국에서 만나는 각종 물상들에 대한 기록은 조선의 왕과 지배층이 유념하기를 바라던 최현의 소망이 담긴 글들이었다. 그가 주력해오던 경세문들의 골자를 이루는 철학이나 시국관으로부터 그의 비평안이 나왔고, 그런 안목으로 중국의 문제적 현실에 대한 관찰을 기록한 결과가 『조천일록』이었는데, 그 점은 그가 글쓰기에서 평생 일관성 있게 견지해온 실용주의의 소산이었다. 예컨대 「新修路河記」나 「題本」 등 중국의 관리들이 쓴 글을 비평 없이 인용한 것도 그런 글들에 제시된 정치∙사회∙안보∙문화∙인물∙역사 등의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견해가 조선의 현실에도 매우 긴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에 들어서는 시점부터 업무를 마친 뒤 귀로에 압록강을 건너기 전까지 사행을 괴롭힌 貪風의 문제나 중국 체류 중 목격하게 된 非禮의 모습들은 조선의 경우도 현재 진행 중이거나 미구에 도래할 문제적 현실로 인식했기 때문에 상세히 기록하고자 한 듯하다. 그것들을 시시콜콜 나열한 것은 중세 보편주의의 근원인 명나라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역으로 조선에도 그런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학문으로서의 유학이나 유교를 가까이 하는 대신 祈福신앙으로 빗나간 非禮의 현장을 통해 유교의 순정성이 훼손되는 모습은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로 인식한 경우였다. 유자이되 실용주의적 사고를 겸한 합리주의적 經世家로서의 최현이 보기에도 중국인들의 신앙은 궤도를 상당히 이탈해 있었던 것이다. 탐풍으로 인한 吏道의 붕괴, 인간적 도리나 예의를 망각한 백성들, 정책의 실패로 인한 민생의 파탄과 그로 인한 오랑캐의 침탈 등 명말 秕政의 근저에 ‘非禮’가 있었고, 그것들은 공고하게 구축되어 있던 중세적 질서를 허무는 요인들이었다. 최현은 권력의 힘으로 백성이나 타국 빈객들의 재물을 탈취하거나 오랑캐들이 침범하여 안보를 해치는 현실 등을 현장에서 목격하며 그것들이 예를 바탕으로 형성된 중세적 통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요인들로서 쉽게 극복할 수 없는 망국의 근원임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조선 역시 지방관들의 탐학으로 민생이 어려워졌고, 안보를 소홀히 함으로써 임진왜란・병자호란 등의 외침을 겪었으며, 그로 인해 중세질서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음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던 최현의 입장에서 그런 말기적 현상들이 중세질서의 본산인 명나라의 경우가 훨씬 더 심각하다는 점을 발견한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최현이 명나라 秕政의 원인으로 非禮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함으로써 유사한 상황에 빠져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조선 지배층을 경각시키고자 한 데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처럼 인재에게 중국 사행길은 단순한 여행길이 아니었고, 당연히 『조천일록』은 단순한 ‘사행 보고서’나 중국 여행기가 아니었다. 조선에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할 현실적 방책이나 처방을 찾아보려는 ‘모색의 길’이자, 자신이 임금에게 올렸던 많은 疏箚들처럼 정치의 방향을 바로 잡도록 進言하는, 일종의 經世的[혹은 警世的] 기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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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 Kyu 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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