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로부터의 창조” 교리에 대한 비판적 연구

Abstract

본 논문은 오랜 세월 동안 기독교의 전통적 창조 교리로 전승되어온 “無로부터의 창조” 교리를 구약성서의 창조 본문들에 대한 주석을 바탕으로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글이다. 본 논문의 논지는 “無로부터의 창조” 교리는 성서적 지지를 받기 힘들다는 것이며, 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無로부터의 창조” 교리의 근거 본문인 창세기 1장에서도 절대적 “無”가 아닌 무질서하고 무가치한 “토후 봐보후”( תהו ובהו )로부터의 세상 창조를 증언한다. 6일 창조 어디에도 물( תהום )과 어둠( חשק )의 창조는 언급되지 않으므로 이것들은 선재적(先在的) 물질로 간주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선재하는 “터홈”( תהום , 심연)에서 궁창과 땅을(6-10절), 흑암에서 빛을(3절) 분리해 내시므로 창세기 1장을 “無로부터의 창조”의 근거 본문으로 읽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둘째, 시편, 이사야, 욥기 등에 운문 단편으로 흩어져 있는 다수의 창조 본문들에서는 창조를 하나님이 선재하는 혼돈 세력(바다 괴물, 바다)을 제압하여 마른 땅( יבשה )을 건져내신 사건(시 74:12-17, 사 51:9-10, 욥 38:8-11), 곧 질서 부여 사건으로 보고한다. 이때 하나님이 제압하신 혼돈 세력은 뭍과 물이 뒤엉킨 상태로 피조물이 살 수 없는 적대적 환경을 의미한다. 셋째, 하나님의 전능성과 유일무이성을 강조하는 데 기여하는 “無로부터의 창조” 교리는 하나님의 공동 창조자로서 부름받은 인간의 신학적 지위를 도외시한다. 시문으로 된 구약성서의 창조 본문들은 하나님의 창조는 태초의 순간에 단 한 번에 이뤄진 완성된 창조가 아니며, 인간을 통해 계속 진행되는 연속 과업임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 사역을 계승하여 하나님의 창조계를 다스릴 공동 창조자로서 인간을 창조하셨다(창 1:26-28, 2:15). 따라서 하나님이 바다에 경계를 정하여 마른 땅을 출현시킨 것처럼 인간에게는 악과 불의의 범람을 막아 정의와 자비가 넘치는 세상으로 변화시킬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