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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성리학의 수용과 그 성격The Acceptance of Neo-Confucianism and Its Characteristics in the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Alternative Title
The Acceptance of Neo-Confucianism and Its Characteristics in the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Authors
강문식
Issue Date
Feb-2018
Publisher
역사문제연구소
Keywords
the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Neo-Confucianism; national school; Sadaebu; the 16th century; continuity.; 고려 말~조선 초; 성리학; 관학(官學); 사대부; 16세기; 연속성
Citation
역사비평, no.122, pp.168 - 194
Journal Title
역사비평
Number
122
Start Page
168
End Page
194
URI
http://scholarworks.bwise.kr/ssu/handle/2018.sw.ssu/40918
DOI
10.38080/crh.2018.02.122.168
ISSN
1227-3627
Abstract
고려의 성리학은 13세기 말~14세기 초부터 원(元)을 통해 수용되었는데, 여기에는 원대 관학뿐만 아니라 남송 지역의 성리학까지 다양한 학설들이 포함되었다. 고려에 수용된 성리학은 관학(官學)으로 수렴되어 연구와 교육이 이루어졌으며, 당시 관학의 학자들은 고려에 수용된 성리학의 여러 학설들을 공유하였다. 따라서 고려 말 사대부의 분기가 그들이 수용한 성리학의 계통적 차이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또, 원대 관학의 체제교학적 특징과 한계는 최근의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임을 고려할 때, 고려 말 사대부들이 원대 관학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에서 탈피하여 송대 성리학을 수용하고자 했다는 주장 역시 역사적 실제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고려 말~조선 초의 성리학은 관학에서의 연구와 교육 및 조선 건국 후의 문물·제도 정비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 이해가 지속적으로 축적되었다. 그 결과 고려 말~조선 초 학자들은, 16세기 학자들에 비해 깊이는 부족할지라도, 성리학의 본질적인 내용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토대 위에서 16세기 이후 성리학 연구의 이론적 심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겉으로 드러나는 차이의 이면에는 고려 말~조선 초 성리학과 16세기 성리학이 공유하는 학문적 기반과 연속성이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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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Humanities > Department of Histor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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