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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대한적십자사의 재건과 조직완비 : 1945-1950open accessThe Reborn and Reorganization of the Korean Red Cross after Korea's Liberation, 1945-1950

Other Titles
The Reborn and Reorganization of the Korean Red Cross after Korea's Liberation, 1945-1950
Authors
윤정란
Issue Date
Sep-2021
Publisher
한국민족운동사학회
Keywords
the U.S. Military Government; Korean Red Cross; American Red Cross; Syngman Rhee; Korean War; Kim Gyu-sik; Seo Jae- pil; 미군정; 대한적십자; 미국적십자; 이승만; 한국전쟁; 김규식; 서재필
Citation
한국민족운동사연구, no.108, pp.219 - 273
Journal Title
한국민족운동사연구
Number
108
Start Page
219
End Page
273
URI
http://scholarworks.bwise.kr/ssu/handle/2018.sw.ssu/41541
ISSN
1226-9980
Abstract
이 글은 그동안 연구성과가 부족했던 광복 이후부터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전까지 대한적십자의 초기 모습 즉 재건과 조직이 어떻게 완비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기존의 연구성과를 충분히 검토하면서 1945년 광복 이후 대한적십자사의 재건과정, 재건 주체들, 그리고 사업 활동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광복이 된 지 10일 후 조선적십자사 창립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이 조직은 일제강점기 일본적십자사 조선본부의 한국인 직원들에 의한 것이었다. 1946년 1월 미군정의 초청에 의해 미국적십자사 민간구제사업부 주재한(駐在韓) 지부 특파원이 내한하였다. 이들은 조선적십자사 재건을 지원하기 위해 왔다. 그로부터 3일 후인 22일 한국인들은 조선적십자사 발기인 총회를 개최하였고, 6개월 후인 7월 27일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2개월만인 9월 27일 미군정장관은 조선적십자사에 대해 해산 명령서를 내렸다. 그 후 1947년 3월 16일 다시 조선적십자사 창립대회가 열렸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조선적십자사는 대한적십자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 후 1949년 4월 30일 대한적십자사 조직법이 국회본회의를 통과하여 법률 제25호로 공포되었다. 이 법에 따라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들은 전국 지방조직 설립에 나섰고 12개의 지방 조직을 만들었다. 1949년 10월 27일 대한적십자사 재조직 기념식이 개최되었다. 조직위원, 중앙위원, 임원, 2부 8국체제의 사무국 등이 모두 갖추어짐으로써 조직을 완비하였다. 대한적십자사가 이와 같이 조직을 완비하기까지 재건의 주체는 정치 사회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였다. 광복이 되자 조직된 조선적십자사 창립준비위원회의 위원 12명은 모두 일제강점기 일본적십자사 한국인 직원이었다. 이 조직이 미군정에 의해 해산된 후 1946년 조선적십자사 창립준비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창립준비위원들은 정치적으로 중도좌우파, 직업은 정치인, 의사, 공무원, 종교인 등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군정은 각계각층이 망라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해산시켰다. 실질적인 이유는 좌익 진영의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시 1947년 3월 17일 조선적십자사 창립대회가 개최되었다. 재건 주체들은 미군정에 협조적인 인물들로 구성되었다. 1949년 대한적십자사가 재조직되었는데, 이때는 모두 친이승만 계열 인물들로 구성되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대한적십자사는 목적한 활동에 따라 재해구호사업, 응급구호법, 보건사업, 소년적십자사업, 부녀사업, 간호부 교육사업, 해외적십자사와의 연대 등을 전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대한적십자사가 재조직되면서 가장 우선적인 일은 회원 확보였다. 1백만명 모집을 목표로 두었는데, 1950년 6월에 그 목표 인원수를 달성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전까지 조직을 완비한 대한적십자사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전시활동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국제적십자와 미국적십자의 원조와 연대, 적극적인 전시활동 등으로 대한적십자사는 단기간에 성장 및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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