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초기 민족정책과 극동지역 고려인 공동체의 교육체계 변화: 1917-1937Ethno-National Policy of the Soviet Union and Changes in the Education System of the Korean Community in the Russian Far East: 1917-1937
- Other Titles
- Ethno-National Policy of the Soviet Union and Changes in the Education System of the Korean Community in the Russian Far East: 1917-1937
- Authors
- 양승조
- Issue Date
- Dec-2022
- Publisher
- 숭실사학회
- Keywords
- 소련; 러시아 극동지역; 프리모리예; 민족정책; 토착화; 러시아화; 고려인; 민족교육; Soviet Union(SSSR); Russian Far East Region; Primorye(Приморье); Ethnic and National Policy; Korenizatsiya(nativization); Russification; Koryo-saram; Education
- Citation
- 숭실사학, no.49, pp.421 - 442
- Journal Title
- 숭실사학
- Number
- 49
- Start Page
- 421
- End Page
- 442
- URI
- http://scholarworks.bwise.kr/ssu/handle/2018.sw.ssu/43219
- DOI
- 10.16942/ssh.2022.49.12.31.17
- ISSN
- 2005-9701
- Abstract
- 국가 성립 초기인 1917-1937년에 소련에서 민족정책은 레닌이 주도했던 ‘토착화정책’과 스탈린집권 이후 나타난 ‘러시아화정책’으로 변화해 갔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중반까지 소련 민족정책을 이끈 것은 소련을 구성하는 종족과 민족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민족적 특성의발현을 국가가 지원했던 ‘토착화정책’이었다. 이 시기에 극동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 공동체역시 소련 초기에 시행된 당국의 이러한 민족정책에 따라 민족어를 기반으로 하는 교육을 활성화할 수 있었다. 러시아 내전으로 인해 1922년까지 극동지역에서는 소련 중앙정부의 민족정책 적용이 지체되었으나, 내전 종료 이후부터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는 1937년에 이르는 15년간 프리모리예에서는 고려인이 러시아어와 함께 민족어인 한어(韓語)로 진행되는 교육 활동을 통해 근대지식을 습득하고 민족문화를 계승할 수 있었다. 20세기 초에 한반도에서는 제국주의 일본에 병합된 후 한어(韓語)에 기반한 문화 전승이 약화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시기에 프리모리예는 고려어라는 한민족의 언어를 사용해서 공교육이 수행되고 전통이 전수되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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