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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과 신라 왕성체제의 변천Wolseong Fortress in Gyeongju and the Development of the Royal Fortress System of Silla

Other Titles
Wolseong Fortress in Gyeongju and the Development of the Royal Fortress System of Silla
Authors
최병현
Issue Date
Mar-2016
Publisher
한국고고학회
Keywords
경주 월성; 국읍; 토성; 왕성; 도성제; Gyeongju Wolseong Fortress; Central town; Earthen wall; Royal fortress; Capital city system
Citation
한국고고학보, no.98, pp.48 - 91
Journal Title
한국고고학보
Number
98
Start Page
48
End Page
91
URI
http://scholarworks.bwise.kr/ssu/handle/2018.sw.ssu/7795
ISSN
1015-373X
Abstract
경주 월성은 1,000년 왕국이라 하는 신라의 역사가 오롯이 담긴 신라의 왕성유적이다. 신라는 긴 역사에서 수도를 경주 밖으로 옮긴 적이 없으며, 경주 안에서도 월성은 신라의 모태가 된 사로국시기부터서기 935년 신라가 국권을 고려에 넘겨줄 때까지 줄곧 신라의 왕성이었다. 『三國史記』를 비롯한 문헌에는 월성과 신라의 궁궐에 대한 기록이 적지 않고, 또 그동안 월성의 주변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가 진행되어 왔다. 이 글에서는 이를 종합하여 경주 월성을 중심으로 한 신라왕성체제의 변천과정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경주 남천변의 자연 구릉이었던 월성과 그 주변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으나, 월성구릉이 사로국의 국읍이 된 것은 서기 2세기 후반 원삼국(사로국) 후기부터였다. 신라가 낙동강 이동의영남지방을 지배하는 왕국으로 발전한 마립간시기(AD 356~514)에 월성 구릉에는 토성이 축조되어, 월성은 사로국의 국읍에서 신라의 왕성으로 변모되었다. 신라 중고기(AD 514~654)에 월성은 도성적성격의 왕성에서 궁성으로 바뀌어, 월성지구는 대궁이 존재한 궁궐 중심의 월성 내부와 월성 밖의 관아지구로 분화되었다. 또 월성지구 북쪽에는 서기 553년 창건된 황룡사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격자형 도로망으로 구획된 民里가 조성되면서 신라의 왕경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은 7세기 후반 월성 밖 동쪽에 연못-月池를 조성하고 동궁을 건설하여, 신라의 왕성은 월성의 정궁과 월성 밖의 동궁으로 확대되었다. 신라는 달구벌 천도계획이 무산된 뒤 8세기에 들어와 왕성체제를 다시 개편하여 월성 밖에 북궁과 남궁을 건설하였고, 왕경의 도시구획도 확대하여 8 세기 후반에는 완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신라의 왕성체제 변천과정은 중국 도성제와 궁궐 배치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를 그대로 모방하지는 않았다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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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Humanities > Department of Histor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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