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비전 - 트라클 시에 나타난 회색의 상징성 연구 -

Abstract

트라클의 시에서 회색은 다른 색에 비해 사용 빈도수가 가장 낮은 색이지만 그의색채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색이다. 그의 시세계에서 회색은 만물이 생기를 잃고 퇴색하는 늦가을과 겨울의 암울한 자연 풍경을 묘사할 때 사용되거나, 절망적인 부동성, 파국, 유폐, 우울, 불안, 공포, 전율 등 세계 몰락의 징후에 대한 예감이나 심리적 감정상태가 표출될 때 선택된다. 전자의 회색이 눈에 비친주관적 인상을 감각적으로 포착한 인상주의 풍경화에 걸맞다면, 후자의 회색은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를 대범하게 이미지화하는 표현주의 그림에 어울린다. 트라클의 회색은 재현과 묘사의 의무에서 벗어나 비가시적인 세계를 가시화하는 비모방적 색조를 띨 때 고도의 시적 상징성을 확보한다. 특히 형용사보다는 명사나 부사로서 회색이 사용될 경우 추상성의 강도가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